상장사의 현금성 자산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국내 주요 기업들이 신규사업 진출과 시설투자를 극도로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신규 투자처가 마땅치 않은데다 유가폭등, 정치권의 이념논쟁 등 경영환경의 불투명성 증대로 ‘결국 믿을 것은 현금뿐’이라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
이는 시중자금 흐름을 왜곡시키고 경기회복을 지연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이 같은 현금성 자산 증가는 한국경제의 버팀목인 제조업이 주도하고 있어 중장기적으로 성장 잠재력 후퇴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조사에서 제조업의 현금성 자금 및 단기금융상품 보유액은 36조8,764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0.4% 늘어 전체 상장사의 76.0%를 차지했다. 반면 비제조업은 11조1,073억원으로 11.7% 늘어나는 데 그쳤다. 1개사당 평균 보유금액도 제조업은 922억원으로 156억원이 늘어났으나 비제조업은 889억원으로 93억원 증가한 데 불과했다.
보유금액 상위 10개사도 지난해 말에 이어 이번에도 삼성전자ㆍ현대자동차ㆍKTㆍ삼성중공업 등 제조업이 모두 휩쓸었다. 간단히 말해 주요 대기업들이 수출호조로 실적이 대폭 개선됐지만 시설투자 및 신규사업 진출에는 섣불리 나서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실제 최근 증권거래소 조사에 따르더라도 지난 8월9일 현재 전체 상장사들의 계열사 등 타 법인 출자금액은 1조1,07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83.3%나 줄었다. 특히 전기전자ㆍ화학ㆍ기계ㆍ통신 등 제조업에 대한 출자금액은 67~83% 줄어든 반면 사모펀드 등 뮤추얼펀드나 투자조합 등 투자회사는 839.0%나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초저금리에도 불구하고 단기금융상품 위주로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며 “기업의 신규투자를 유도, 일본형 장기불황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