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Next Wave’로서 바이오 산업이 차세대 먹거리로 자리 매김하고 투자의 필요성이 강조된 지 이미 수 년이 지났다. 정작 바이오 벤처 회사나 기술에 대한 투자는 식품ㆍ사료ㆍ미용 등 진정한 ‘Next Wave’와는 거리가 먼 분야에 집중됐다. 세계시장에서 매년 1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바이오 제품은 신약이나 치료제 등 의료산업에 직접 연관된 기술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는 개발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 그리고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유망기술의 발굴 부족 등으로 그런 분야에 대한 투자가 미미하다. 국내 대기업들은 몇 년 전에 전담부서를 만들었지만 아직도 기술 검토 중이다. 이렇다 할 투자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투자대상 회사나 기술에 대한 내부적인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바이오 시장은 이런 상황이지만 미국에서는 바이오 벤처의 성공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신약개발 성공사례에서부터 최근에는 의료기기 회사들, 세포치료제 개발 회사들, 조직ㆍ장기재생 분야에서도 ‘빅딜’ 뉴스들이 흘러나온다. 그러면 관련 회사 가치가 천정부지로 급등했다는 뉴스가 뒤따른다. 그렇다면 한국과 미국의 차이는 무엇인가. 과거 우리 농업과 구미의 농업은 ‘천수답’과 ‘기계농’이라는 말로 비교됐다. 현재 바이오 산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벤처투자자들(VC)은 회사 안에 바이오 전문가를 두고 투자한 회사를 집중적으로 관리한다. 해당 기술의 산업적 발전을 예측하고 그에 맞춰 관련 회사를 묶기도 하고 기술을 섞기도 하면서 투자한 회사의 가치를 키운다. 이에 반해 한국 투자자들은 사후관리가 없다. 오로지 투자한 회사가 코스닥에 등록하는 날만 유일한 투자환수의 기회로 기다릴 따름이다. 바이오 기업의 특성상 투자환수 기회는 투자 후 7~10년 사이에 한 두 번 밖에 없다. 지난 2000년 바이오 벤처 붐 때 투자했던 투자자들 대부분이 아직도 환수를 기다리는 중이다. 설익은 기술로 코스닥에 등록했던 곳도 주가가 반토막 이상이 났다는 현실이 이를 반증한다. 천수답을 소작 시키는 지주가 ‘대풍’을 기다리는 것과 글로벌 안목이 없는 투자자가 바이오 벤처 투자로 ‘대박’을 기대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결국 바이오 벤처 투자가 ‘쪽박을 차느냐, 대박을 내느냐’는 투자자의 손에 달려있는 셈이다. 최첨단 과학에 기초한 바이오 벤처는 관련 분야의 발전에 따라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야 한다. 수시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도입해야 된다. 관련 없어 보이는 분야의 기술까지도 장차 개발될 최종 기술에 접목될 수 있을지를 살피고 도입도 고려해야 한다. 만약 투자자들이 투자 후 해당 기술의 발전 동향에 무관심하다면 바이오 벤처 회사가 새로운 기술을 이유로 자금을 요청할 경우 투자자들은 현란하게 발전한 과학기술에 놀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기술 발전은 생각지도 않고 벤처 회사의 2차ㆍ3차 증자에 따라 갈 결정해야 한다면 ‘창업자만 믿고 투자한다’는 궁색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반면 미국의 VC는 ‘돈으로 기술 발전을 리드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투자회사의 기술을 좌지우지 한다. 그러면서도 막무가내가 되지 않도록 해당 분야에서 최고의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에게 그 일을 맡긴다. 바이오 벤처 회사 경영진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기술 개발을 관리한다. VC들은 이미 관련 업계에서 명성과 영향력이 대단해 투자 받은 회사들은 지분율에 상관없이 그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투자 분야의 기술 발전을 잘 이해하고 글로벌 수요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3~4년 마다 찾아오는 투자환수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한국 바이오 벤처 시장은 대학과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기초연구와 다양한 기술을 가진 바이오 벤처 회사들로 인해 꽤 좋은 토양을 갖고 있다. 미국의 VC와 거대제약 회사들이 지난해부터 한국 바이오 시장에 투자를 시작했다. 한국의 투자 회사들도 바이오 벤처 투자를 ‘천수답’에서 ‘기계농’으로 바꿔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