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를 '도박 공화국'으로 몰고 간 정책 실패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 문제가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 여권은 이번 사건을 '권력형 게이트'로 몰고 가는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기 위해 일찌감치 '정책 실패'를 인정한 상태. 노무현 대통령은 '정책 오류'라고 표현했다. 야당에 의해 촉발된 대통령 사과 문제는 지난 23일 김한길 원내대표가 '대국민 사과론'을 공식 제기한 데 대해 청와대가 '선 규명, 후 사과론'을 펼치면서 여권 내부에서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청와대 "사과할 일 있으면 사과할 것"
이병완 비서실장 "전체적인 상황 우선 파악해야"
청와대는 '선 진상규명, 후 사과 여부 검토'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청와대가 책임을 회피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번 사태의 실체파악과 원인규명이 종합적으로 이뤄진 뒤에 사과 여부 및 그 수위를 검토하는 것이 사리에 맞다는 취지다.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은 24일 기자간담회에서 대국민 사과 요구에 대해 "감사원 감사, 검찰 수사를 통해 사실과 진상 등 전체적인 문제점이 드러나면 그것을 평가한 후 수준과 방법과 방식이 결정되는 것이 사리에 맞다"고 밝혔다.
이 실장은 "전체적인 상황을 우선 파악하고 그 내용을 본 후 대통령이 사과할 필요가 있다면 대통령이, 총리 수준의 사과가 필요하다면 총리가, 장관급 수준의 사과가 필요하다면 장관이 사과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실장은 이어 "참여정부 들어 대통령이 사과를 해야 할 일이 있었을 경우 사과에 인색한 적이 없었다"고 언급, 진상조사 결과에 따라 성인오락게임 정책 실패에 대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이 실장은 그러나 "당장 대국민 사과를 한다고 해서 뭐가 바뀌는 것은 아니며 지금 누가 나서고 안 나서고 이야기할 문제는 아니다"며 "사과가 전제되려면 정책의 잘못이나 문제점들이 밝혀져야 하고 함께 따라가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당 "당·청 갈등 비쳐질라" 속앓이
동반책임론 제기등 수위조절 '뜨거운 감자'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며 강경 입장을 보였던 열린우리당은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하기는 했지만 속앓이를 하고 있다. 청와대와 얼굴을 붉히게 되면 당청 갈등이 다시 부각될 게 뻔하고 소극적으로 있자니 민심을 수습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정책 실패에 대해 정중하게 대국민 사과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던 김한길 원내대표는 24일 고위정책조정회의에서 "정부, 여야 정치권 모두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며 수위를 조절했다. 또 "정책집행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점과 관련 법안을 잠재워뒀던 국회의 책임도 매우 크다"며 '동반 책임론'을 제기했다.
지도부의 수위조절은 당내 일부 반발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당내 친노그룹의 한 의원은 "결국 대통령이 사과를 하라는 얘기인데 동의할 수 없다"며 "책임소재를 가린 뒤 정말 사과가 필요한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근본입장이 변한 것은 아니다. 한 핵심 당직자는 "정부가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는 당의 시각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며 "날마다 요구를 하지 않는 것뿐이지 대국민 사과 요구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정치적 파장보다 민심 수습이 우선인 당으로서는 언제든 강경 입장으로 돌아설 수 있다. "피해자가 주로 삶이 고달픈 서민들이어서 서민경제 회복을 위해 애쓰고 있는 당으로서는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라는 김근태 의장의 말이 이를 방증해준다.
한나라 "총리 사과로 끝날 일 아니다"
연우 의혹 여권 실세 철저한 조사 요구등 압박
한나라당 등 야당은 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에 연루된 의혹이 있는 여권 실세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대통령의 사과 등을 요구하며 여권을 압박하고 있다.
한나라당 내 진상조사특위 위원장인 안상수 의원은 24일 기자회견에서 "한나라당에 접수되는 바다이야기 관련 제보에는 많은 권력 실세들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며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의 조카 노지원씨는 물론 여권 실세와 노사모ㆍ386 등 모든 관련자들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나라를 온통 도박 공화국으로 만들며 총체적 국정파탄을 초래한 데 대해 노 대통령은 국민에게 정중히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오 최고위원은 한발 더 나아가 사행성 게임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자의 사법처리를 요구했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권력형 도박 게이트는 문화부 장관의 책임이나 국무총리의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다"며 "검찰은 현재 거론되는 전직 총리와 전현직 장관 등 권력 실세와 배후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가세했다.
민주당도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정책 실패'라고 물타기하지 말라"고 공격했다. 김재두 부대변인은 논평에서 "'도박 게이트'는 단순히 정책 실패가 아니라 권력형 비리라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며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