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공직자가 유관 사기업체 등에 취업하는 것을 문제 삼을 때마다 단골로 거론되는 것이 공직자윤리법이다. 공정거래위원회 퇴직자들의 대형 로펌(법률회사)행도 단골 이슈다.
지난 2005~2006년 공정위를 퇴직하고 민간에 취업한 4급 이상의 공무원 22명 중 11명이 로펌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이들은 공정위 재직 중 기업들의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판정하고 과징금을 부과하는 업무나 공정위ㆍ기업 간 소송을 처리하는 업무를 맡다가 퇴직 후 몇 개월 안에 로펌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퇴직 후 2년 동안 ‘퇴직 전 3년 이내에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정 규모 이상의 영리사기업체 또는 이들 기업의 공동이익ㆍ상호협력 등을 위해 설립된 법인ㆍ단체’에 취직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도 공정위 출신의 로펌 직행(直行)이 가능한 것은 공직자윤리법상 ‘취업이 제한되는 영리사기업체의 규모’에 대해 대통령령이 ‘자본금이 50억원 이상이며 외형거래액이 연간 150억원 이상’으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로펌들은 자본금 50억원 이상인 곳이 없어 이런 제한을 피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공정위 재직 당시 과징금을 부과한 기업의 소송을 대리하는 로펌에 취업해 자신이 부과한 과징금을 깎는 데 앞장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공직자윤리법을 관장하는 행정자치부도 공정위 퇴직자에 대한 취업 제한 여부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업무 관련성은 공정위 퇴직자와 로펌 사이에 있는 게 아니라 퇴직자와 로펌이 소송을 대리하는 기업 사이에 있기 때문에 로펌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과잉 입법 금지원칙’에 저촉된다”는 반대론에 무게가 실린 것 같다.
문제는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들도 “공정위의 조사기법과 논리ㆍ인맥을 잘 아는 공정위 출신들이 공정위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절대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고 인정한다는 사실이다.
취업 제한 사기업의 규모를 ‘자본금 50억원 이상 또는 외형거래액이 연간 150억원 이상’으로 고치는 방안을 검토 중인 행자부가 퇴직공직자들의 ‘부적절한 로펌 취업’ 제한을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