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내야 할 세금이지만 조금이라도 덜 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성일 게다. 이런 까닭에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는 개인과 사업자에 대해서는 세무당국이 포상도 하고 세무조사도 면제해준다. 반대로 제대로 내지 않는다면 가산세와 가산금을 물리며 더러는 세무조사과정에서 다른 세목의 탈세까지 가려낸다.
게다가 고의로 부정한 방법을 동원, 탈세했다면 조세포탈사범으로 형사처벌까지 받는다. 세금을 한푼도 누락 없이 100% 다 낸다 할지라도 신성한 국민의 의무를 다한다는 충정심보다는 혹시나 뒤탈이 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공평과세는 세정(稅政)의 으뜸 원칙이다. 공평과세체계가 무너진다면 나라가 흔들리게 된다.
요즘 직장에서 연말정산 서류를 챙기는 동료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근로소득세를 월급에서 꼬박꼬박 냈으니 근로과정에서 발생한 지출에 대해 소득공제를 받는 것은 납세자의 당연한 권리다. 연말정산을 준비하는 샐러리맨들은 연말정산이 왜 이렇게 어렵냐며 이구동성으로 불만이다.
얼마 전 과거 3년간 연말정산에서 부당공제 사실이 적발된 봉급생활자가 53만명에 이르며 국세청이 이들로부터 580억원을 추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추징금액에는 세금 누락분 외에도 10%의 가산세가 포함됐다. 세무당국의 탁월한 탈세 추적력이 놀랍기도 하지만 샐러리맨 50만여명을 범법자로 취급하는 데서는 썩 유쾌하지가 않다.
세무당국이 적발한 53만명의 봉급생활자 가운데 가짜 영수증을 제출한 납세자가 없지는 않겠지만 복잡한 세법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선의’의 탈세자 역시 적지않을 것이다. 오히려 영수증을 다 모으지 못해서, 또는 복잡한 세법을 이해하지 못해 당연히 받아야 할 공제혜택까지 모르고 넘어가는 성실납세자의 공제누락금액이 국세청의 추징금보다 많았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세무당국은 내년 이맘때에도 연말정산 안내에 앞서 부당 소득공제에 대해 철퇴를 내리겠다고 엄포를 놓을 것이며 실제로 상당액을 추징할 것이 분명하다. 부당하게 소득공제한 봉급생활자를 탈세자로 몰기보다는 이듬해 5월 종합소득세 신고기간에 전년도 연말정산의 오류(?)를 통보해주고 납세자 스스로 수정할 기회를 주는 것이 선진 세무행정이 아닌가.
참여정부 초대 국세청장인 이용섭 청장이 ‘세테크’를 잘해 한푼의 근로소득세도 내지 않았다는 1년10개월 전 청장 청문회 때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아는 만큼 절세할 수 있는 과세체계는 공평과세의 원칙과는 너무나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