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국정원의 도청 의혹과 관련, 검찰 수사를 받아온 이수일(李秀一) 전 국정원 2차장의 자살이 정국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김 전 대통령측이나,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민주당 등 정치권은 그의 자살 하루 뒤인 21일 일단 `안타까운 일'이라는 공식 반응만 내놨다. 그러나 촉각은 이 전차장의 자살 원인이 도대체 무엇이냐에 온통 쏠렸다.
경찰 수사결과 이날 오전까지 그의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고, 이 전 차장을 수사한 검찰 역시 "왜 자살에 까지 이르렀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드러나면 정치권은 한바탕 요동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치권이 초긴장하는 배경이다.
"검찰이 사실이 아닌 것을 억지로 만들어내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해온 김 전 대통령측의 대응 수위, 또 국정원 도청 자료의 한나라당 유출 등 검찰 수사의 향배, 호남 민심의 추이에 따라 이 전 차장의 자살은 도청 정국의 분수령으로작용할 수도 있다.
우선 DJ측의 얘기대로 `무리한 수사에 따른 불가피한 부작용' 일 경우, 현 여권이 감당해야할 정치적 부담은 무한대가 된다.
신 전 원장의 변호를 맡은 우리당 의원들의 전언으로는 신 전원장 구속직전 이전 차장이 울먹이며 전화를 걸어 "죄송하다", "죽고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현재로서는 검찰 수사의 옥죄기가 그를 죽음으로 이끌어 갔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물론, 여권으로서는 "임동원.신 건 두 전직 국정원장의 구속은 우리의 뜻과 무관하다"며 검찰 책임론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초대형 사건의 경우 검찰총장과 법무장관, 위로는 청와대와의 조율까지거쳐야 하는 검찰 수사의 생리는 이미 동국대 강정구 교수 건 등을 통해 일반 국민들까지 알고 있는 사안이다. 우리당의 입장과는 별개로 여권 전체가 곤경에 처할 수있다는 얘기다.
여권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호남 민심의 극단적 이반이다. 가뜩이나 이번 도청 수사를 `제2의 대북송금 특검'으로 인식하고 있는 호남 민심에 이 전 차장의 자살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6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는 치르나 마나가 될 수 있다.
민주당측이 이날 공식 브리핑에서 "김대중 정부를 도덕적으로 흠집 내려는 정치적 의도에 따라 검찰이 이 전 차장에 대해 무리한 수사를 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있다"고 말한 것도 모종의 정치적 노림수가 잠재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여권 일각에서는 도청 수사결과 국민의 정부 당시 무분별하고 조직적인 도청이 있었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 이상 호남 정서에 무작정 끌려다녀서는 안된다는주장도 있다. 오히려 이 전 차장의 자살을 무리하게 정치쟁점으로 끌고 갈 경우 여론의 향배에 따라 현재의 도청국면이 180도 뒤바뀔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전 차장의 자살 원인을 둘러싼 두번째 시나리오는 한나라당 관련 설이다. 그가 검찰 조사에서 한나라당에 도청 관련 문건을 유출했는지 여부를 조사 받았다는정황에서 나온 관측이다.
그러나 검찰은 "한나라당 관련 부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고, 한나라당 역시 "신 전 원장의 심복인 그가 자료 유출을 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어 실제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이번 수사의 칼끝이 결국은 한나라당을 최종 타깃으로 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정치권의 관측이 있어왔고, 실제로 검찰이 이 부분에 대한 수사를 진행중이어서 이 전 차장의 자살 원인과 관계없이 수사 결과에 따라 파장은 일파만파로 확대될 수 있다. 한나라당이 이 전 차장 자살 직후 "도청수사가 왜곡된 방향으로 이끌려서는 안된다"고 일침을 놓은 배경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