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등과 환율 급락은 예상대로 기업들의 성적표에 직격탄을 가했다. 성장률이 올라가도 국민들의 호주머니는 채워지지 않는 ‘공회전 현상’이 국가경제에 굳어지고 있듯이 기업들의 경영실적도 살만 계속 붙어갈 뿐(외형성장) 속은 영양실조가 심해지고(이익률 감소) 있다. 더욱이 제조업 부문에서 중국 업체들의 과잉공급 영향이 본격적으로 미치기 시작, 철강을 비롯한 일부 업종의 경우 출혈이 심각한 수준에 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2ㆍ4분기 이후로 벌써부터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경기를 감안하면 기업들의 채산성과 수익구조를 보여주는 신호등이 노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제조업 4곳 중 1곳이 적자=한국은행의 지난 1ㆍ4분기 기업 경영분석을 보면 외형성장세는 계속됐다. 전체 업체의 매출액 증가율이 6.9%로 전년 동기보다 2.6%포인트 올랐을 뿐더러, 특히 우려됐던 전기ㆍ전자업종도 반도체 등의 판매단가가 떨어졌음에도 전년도 마이너스 5.0%에서 올해에는 4.9% 증가로 돌아섰다. 하지만 밀어내기와 출혈 수출의 여파는 수익성을 고스란히 갉아먹었다. 가변요소를 배제한 매출액 영업이익률로 따질 때 제조업은 5.9%에 머물러 전년 동기보다 2%포인트나 급락했다. 1,000원어치 물건을 팔아 고작 59원만 남겼다는 뜻이다. 더욱이 제조업체 가운데 경상이익률이 0% 미만인 기업, 즉 적자업체의 비중은 26.8%로 지난해 동기의 23.7%보다 더 커졌다. 이익이 줄어들면서 빚을 갚을 능력도 현저하게 떨어졌다.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수치인 ‘이자보상비율’은 지난해 1ㆍ4분기 746.7%에서 올해는 546.1%로 무려 200.6%포인트나 추락했다. 유가 급등과 환율 하락에 녹아 떨어져 채산성이 악화되면서 한계기업이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지난해는 1,000원어치를 팔면 그중 916원이 매출원가와 판매관리비였지만 올해는 933원으로 원가부담이 올라갔다. ◇중국발 파고 본격화=1ㆍ4분기 실적에서 더욱 눈에 띈 것은 중국업체들이 시설확충을 통해 만들어내는 제품이 국제시장에 유입되면서 과잉공급으로 연결돼 판매단가 하락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우리 업체들에 피해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철강제품은 중국제품의 융단폭격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업종 분류상 철강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금속제품은 매출액 증가율이 지난해 1ㆍ4분기 22.5%에서 올해에는 마이너스 10.5%로 한참 뒷걸음질쳤다. 과잉공급으로 경쟁이 심해지면서 이익도 곤두박질쳐 지난해 1ㆍ4분기 17.8%에 달했던 매출액 영업이익률이 올해에는 8.8%로 반토막 났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올 1ㆍ4분기에 내수기업의 수익성 악화 정도가 더 심했는데 유가 급등 외에 철강업 부진이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문제는 이 같은 실적악화가 2ㆍ4분기 이후에도 개선될 기미를 그리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산과 출하를 이끌었던 수출 부문의 채산성이 계속 나빠지고 있는 상황. 일부 기업들이 추가적인 원화 가치 절상에 대비해 대대적인 밀어내기 수출을 감행한 실정인데다 내수기업도 회복세가 워낙 완만해 턴어라운드 분위기를 찾기 힘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제조업의 유형자산 증가율이 1.7%로 지난해의 1.9%보다 둔화된 데서 볼 수 있듯이 투자활동도 오히려 퇴보하는 기색이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선거 이후 정책의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민감한 현안들이 대기 중이어서 기업들의 경영활동 부진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