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12월 15일] 예산 써보지도 못한 서울시

서울시가 공공관리사업지원의 내년도 예산을 올해의 절반 이하로 삭감했다. 올해에는 77억원이 넘는 예산을 책정했지만 내년도에는 30억원만 필요하다고 의회에 요청했다. 그간 재건축ㆍ재개발 정비사업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반대 목소리에도 굴하지 않고 의욕을 보여온 서울시의 행보와는 맞지 않는 행동이다. 취재 결과 그럴 만한 사정이 확인됐지만 그 이유는 기자를 아연 실소하게 만들었다.0 잘 알려진 대로 공공관리사업지원 예산은 재건축ㆍ재개발 추진위를 구성하는 데 지원된다. 재개발ㆍ재건축 추진위 구성단계에서 그동안 온갖 부패와 비리 문제가 끊이지 않았던 만큼 이 사업을 지원하는 예산은 공공성 강화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올해 받은 77억원 중 60억원은 써보지도 못하고 불용 처리해야 할 상황이다. 서울시는 연초부터 사업추진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예산부터 확보했지만 입법절차가 늦어져 공공관리제도가 올해 7월에야 시행됐기 때문. 그 결과 올해 예산 지원을 받은 추진위는 17곳에 불과했다. 서울시는 내년도에 30개 정도의 추진위가 지원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내년도 예산으로 30억원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특정 사업 예산의 80% 가까이를 불용 처리한다는 사실을 수긍할 서울 시민은 많지 않다고 본다. 물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나 정확하게 예산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식의 일처리로 서울시 예산의 상당액이 해마다 불용 처리된다고 하면 그 경제적 손실이나 비효율이 결코 가볍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2009년도의 경우 서울시 총예산 25조원 가운데 6.5% 정도인 1조6,000억원 정도가 불용 처리됐다고 한다. 당연히 시의회의 강한 질책이 아니더라도 서울 시민들의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질 판이다. 사업의 진행경과야 어찌되건 일단 예산이라도 확보해놓고 보자는 주먹구구식 행정으로 수십조원의 부채가 쌓인 서울시의 예산에는 더욱 주름이 가게 생겼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돈이 잘못된 예측과 졸속 심사로 불용 처리돼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게 될지 심히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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