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의 실적을 경신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기업의 투자가 극도로 위축됨에 따라 실업률이 줄어들지 못하고 있다. 이는 수출 효자 품목인 반도체ㆍ휴대폰ㆍ자동차 업종에서도 확연히 들어나고 있다. 김영태 한국은행 국민소득팀 과장은 “반도체ㆍ휴대폰의 경우 주요 장비의 수입의존도가 높아 국내 생산 유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반도체ㆍ휴대폰은 생산설비의 6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수출이 증가해도 국내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높지 않은 상황이다. 즉 반도체ㆍ휴대폰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생산설비 투자를 확대해도 관련 부품소재 업체의 이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또 “생산설비의 수입의존도가 낮은 품목들의 경우 노사갈등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국내 설비 투자가 지지부진한 상태”라며 “자동차의 경우 환란이후인 1999~2000년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져 자동차의 내구연한이 상당히 남아 있는데다, 내수부진도 지속되고 있어 당분간 국내 생산라인 확대는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자동차관련업종(자동차ㆍ부품ㆍ타이어 등)의 경우 지난 2003년 생산설비 투자는 2002년대비 17.1% 감소했고, 2004년에는 전년대비 무려 27.3%나 줄어 들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생산설비 투자 없이 고성장을 유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제조업체들은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어, ‘고용없는 고성장’이 더욱 고착화되고 있다. 지난 2001년 국내기업의 대(對)중국 투자는 5억8,000만달러였으나, 2002년에는 9억3,900만달러, 2003년에는 13억6,500달러에 달하는 등 매년 40%대의 높은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중소기업들마저 정부의 규제와 노사갈등ㆍ고임금 등 경영 환경이 악화됨에 따라 우리나라를 떠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환란이후 외국인들의 국내 주식투자 비중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이 재무 건전성 확보를 위해 무리하게 현금확보에 열을 올리는 것도 투자를 미루게 하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은 “국내 기업의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선 수출비중이 높은 품목 중 생산설비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품목에 대한 정부의 기술지원을 강화하고, 규제 완화와 노사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노사분규로 인한 노동손실일수는 지난 2002년기준 일본의 111배에 달하는 등 기업의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김 원장은 “일 자리 창출을 위해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선진국에 비해 과도한 규제나 노사갈등이 있는 한 국내기업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해외기업은 국내 투자를 기피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오석 무역연구소장은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정부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시켜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장기적으로는 IT제품 등 선도 산업의 수출(생산)증가가 부품ㆍ소재 산업 등으로 생산 확산으로 또 설비투자증가의 선순환 구조로 전환되기 위해 부품과 소재 산업을 육성하는 정부의 산업정책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