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 여아를 성폭행해 영구장해를 입힌 이른바 '조두순 사건' 발생 당시부터 검찰 수사 전과정에서 초기 피해증거 채취는 물론 법 적용 오류, 범인을 단정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 제출 지연 등의 총체적 부실이 있었던 것으로 재확인됐다.
특히 검찰은 피해아동을 상대로 한 비디오 녹화 과정에서 조작미숙으로 진술을 네 번이나 하게 해 2차 피해를 입힌 것으로 조사됐다.
15일 대한변호사협회 '조두순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 10월부터 2개월간 9명의 변호사를 투입해 해당 사건을 조사하고 이 같은 결과를 발표했다. 피해아동과 어머니는 이날 검찰이 형사기록 열람ㆍ등사신청을 포기하도록 종용하기도 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3,0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소송 대리를 맡은 변협의 한 관계자는 "검찰 측의 증거조사 미비로 피해아동이 2차적인 고통을 받은 점에 따라 앞으로 이런 사태를 근절하기 위해 소송을 낸다"고 설명했다.
◇조두순 진술 영상 판결 직전에야 법원에 제출=경찰이 조두순의 진술 영상을 확보해 검찰에 제공했지만 검찰은 선고 직전에야 이를 증거자료로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고등법원 항소심에서 조두순은 "피해아동이 인상착의를 검은 머리에 안경을 안 썼다고 진술했지만 나는 백발에 안경을 착용한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이 때문에 피해아동은 법정에 나와 진술을 다시 해야만 했다. 만일 검찰이 조씨가 당시 검은 머리에 안경을 쓰지 않았던 영상이 나오는 경찰의 진술 녹화영상을 재판부에 일찍 제출했다면 미연에 피해아동의 법정 출석을 방지할 수 있었다.
이에 앞서 검찰이 피해아동의 진술자료를 만들면서 비디오 녹화 미숙으로 똑같은 범행진술을 네 번이나 반복하게 해 2차 피해를 입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한 번은 녹화조차 되지 않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음량조절에 실패해 피해아동이 기억하기도 싫은 범행 당시 상황을 네 번이나 곱씹게 했다"고 지적했다.
◇초기 증거수집부터 사실상 부실=검찰 수사과정뿐만 아니라 피해아동을 가장 먼저 진찰했던 병원단계에서부터 초기 증거수집에 허점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병원은 성폭행에 따른 증거를 채취하는 1차기관으로서 피해자의 질액 등을 채취해 증거자료로 경찰에 제출하게 돼 있다.
그러나 피해아동을 처음 진료한 고대안산병원의 응급실간호 기록지에 따르면 피해자가 응급실에 도착할 당시 질액을 채취해 경찰에 제출했다고 기재돼 있으나 경찰과 검찰은 재판과정에서 이 자료를 증거로 제출한 적이 없다.
피해아동의 부모는 "당시 증거채취를 요구했으나 거절 당했다"고 주장했다. 질액 채취자료가 없어 조두순은 재판 내내 '증거 불충분에 따른 무죄'를 주장했다. 지금까지 병원은 분명히 제출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검찰이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은 건네 받는 적이 없다며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