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지난 대선과정의 불법 대선자금 모금을 주도했다고 시인하며 자진해서 검찰 조사를 받음에 따라 수백억원에 달하는 한나라당 대선자금 모금 과정이 베일을 벗게 될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 동안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는 자금의 규모에 초점이 맞춰졌었지만 이날 이 전 총재가 검찰에 자진 출두함으로써 수사는 이제 `불법 대선자금 모금이 누구의 기획과 지시로 이뤄졌느냐`의 문제로 자연스럽게 옮아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나라 최돈웅ㆍ김영일 의원, 서정우 변호사, 이재현 전 한나라당 재정국장 등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이 전 총재가 검찰에 스스로 출두함으로써 구체적인 단서를 아직 찾지 못한 검찰은 상당히 난감해 했다.
현재 서 변호사와 이 전 재정국장, 최 의원 등 핵심 측근들이 이 전 총재의 지시 여부를 포함한 불법 모금경위에 대해 일절 함구하고 있는 상태여서 검찰 수사는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이날 조사에서도 검찰은 불법 대선자금 모금을 주도하게 된 경위와 함께 누구에게, 또 누구를 대상으로 자금을 모을 것을 지시했는지를 집중 추궁했지만 이 전 총재는 “내가 지시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내가 지겠다”고 말하면서도 법적으로 `의미 있는` 진술은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문효남 대검 수사기획관은 “다른 관련자에게서도 (이 전 총재 불법 모금 지시 여부에 대한) 구체적 진술이 없기 때문에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언급해 이 전 총재의 개입 여부를 밝혀내기 위한 사전 조사가 미진한 상태임을 내비쳤다. 이 때문에 검찰은 이날 오후 7시20분께 이 전 총재를 일단 귀가시켰다. 검찰은 당 관계자 수사 등을 통해 이 전 총재가 사전에 지시한 흔적 등이 있을 경우 이 전 총재를 다시 불러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일단 이 전 총재의 자진 출석을 지렛대로 삼아 양쪽 대선캠프에 수사협조를 촉구하면서 진상 규명에 주력하는 대신 사법처리 대상과 수위는 최후로 미루는 전략을 구사할 공산이 크다.
이와 관련, 검찰은 이날 LG와 삼성 등으로부터 불법 대선자금을 받는 과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서 변호사와 이 전 국장을 다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그 동안 여러 차례 출석 요구에 불응했던 최 의원이 16일 검찰에 출두하면 한나라당이 SK와 삼성, LG, 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들로부터 500억원대 불법 대선자금을 수수하는 과정에 이 전 총재 등 당 수뇌부의 지시가 있었는지 등을 집중 추궁할 방침이다.
<오철수기자 csoh@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