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낮 12시5분 과천 정부종합청사 재정경제부 기자실. 권태신 국제금융국장이 긴장된 얼굴로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내용은 무디스의 한국 국가신용등급 전망 하향조정. 순간 귀를 의심했다. `무디스라고?`.
전혀 뜻밖이었다. 긴급브리핑이 있다는 전갈을 받은 게 11시35분. 재경부 국제금융국장이 `긴급`하게 전할 사안이 뭘까. 신용등급 외에는 다른 생각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렇다면 3대 평가기관중 어디일까. 가장 먼저 무디스를 제외시켰다. 하향조정은 없다고 수차례 확인해왔기 때문이다.
무디스 자체가 그랬고 한국의 관리들도 그랬다. `무디스`라는 말을 듣는 순간 혼란스러웠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불과 사흘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전망에 대한 하향조정은 없다고 강조하던 무디스가 아니던가.
결과적으로 무디스는 거짓말을 했다. 좋다. 무디스는 그렇다고 치자. 어차피 외국인들이니까.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다. 재경부 장관에서 태통령직인수위원회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관료와 신주류들도 연일 신용등급 현행 유지를 자신해 왔다. 그만큼 무디스의 말을 믿었다. 무디스가 한국을 도마위에 놓고 신용등급평가위원회를 연다는 사실 조차 아무도 알지 못했다. 무턱대고 무디스만 믿다 날벼락을 맞은 꼴이다.
한국의 공무원들은 바보들만 모였을까. 그렇지 않다. 재경부와 인수위 등에는 나라를 대표하는 엘리트들이 다 모여 있다. 그런 사람들이 무디스에 휘둘려 넋놓고 있다 뒤통수를 맞았다.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다.
거짓말과 바보놀음, 둘 중에 누구의 잘못이 클까. 답은 명확하다. 바보의 잘못이다. 국제사회의 룰은 간단하다. 억울하면 힘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 것은 거짓과 진실의 차원과 관계없다. 거짓은 용서될 수 있어도 바보는 용서될 수 없는 게 생존의 게임이다.
한계를 알고 잘못을 생각하는 바보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외환위기후 처음으로 신용등급이 떨어질 처지가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무디스가 보낸 비보를 맹목적 신뢰와 자만에 다시는 빠지지 말라는 메시지로 새겨두자. 그래도 이 거 한 가지는 두고 두고 기억할 필요가 있다. `괘씸한 무디스`.
<권홍우 기자(경제부) hongw@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