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3일 발표한 새해 재정운용계획을 살펴보면 균형재정을 달성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 하나는 인정된다. 총 117조5,429억원의 새해 예산은 올해 본예산에 비해 5.4% 늘어난 수치지만 두 차례의 추경예산을 감안하면 도리어 0.49%가 줄어, 걸프전이 있었던 지난 91년 이후 13년 만에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한 초긴축 예산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는 균형재정을 위해 내년에 국채를 발행하지 않는 대신 공적자금 2조원의 상환을 연기해 가용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참여정부의 첫 예산편성으로 균형재정 달성 의지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새해의 예산운용 사정이 이처럼 빠듯하지만 국방과 복지 부문에서는 각각 8%와 9%의 증액이 이루어지다 보니 수출과 중소기업의 신용지원이 위축되고 주요 사회간접자본 투자는 도리어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다.
참여정부의 키워드가 복지와 지방분권인 만큼 새해 예산안에 이를 반영하는 것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또한 날로 심각해지는 청년실업률을 감안할 때 사회복지 투자의 일환으로 청년실업대책에 과감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투자와 소비가 위축된 상황에서 우리경제의 성장을 견인해온 수출환경이 최근 들어 환율 하락 등으로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아무리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자제한다고는 하나 수출업체에 대해 보증여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예산의 경기조절 기능을 너무 소홀히 한 게 아닌가 여겨진다. 정부가 최대의 역점을 두고 있는 청년실업대책도 단편적인 일자리 창출에 치우친 감이 많아 실효성이 의문시 된다.
더욱이 올해보다 24.8%, 47조원이나 늘어나 총 규모가 237조원을 넘어선 기금운용계획도 일반회계의 기조와 다르지 않아 재정의 경기조절기능이 지나치게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제기된다.
결국 내년에 경기가 회복돼 7~8%의 경상성장률을 달성할 것으로 내다보는 정부가 올해 본예산 대비 5.4% 증액한 새해 예산안은 너무 보수적이어서 소극적이라는 인상마저 준다. 비록 재정의 경기조장 기능이 과거보다 줄어들기는 했으나 올해보다 1인당 6.0%나 늘어난 세부담을 해야 하는 국민들로서는 지연되는 경기회복과 늘어나는 조세부담으로 이중고를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정부는 여유자금이 급증하는 기금 등을 폭 넓게 활용하고 일회성 복지예산을 부분적으로 줄이더라도 경기활성화를 위해 보다 과감한 재정운용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김호정기자 gadget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