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이 생명보험업계 `넘버 3`로 추락했다. 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전후해 부동의 2위로 올라서는 듯 했지만 대한생명에 덜미가 잡힌 후 그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때맞춰 대한생명은 최근 TV광고를 통해 `2등`임을 강조하고 있다. 두 회사의 각종 경영지표로 볼 때 교보생명이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확실히 앞서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지난 2000 회계연도까지만 해도 교보는 여러 측면에서 대한생명을 앞서고 있었다. 당시 신창재 회장 취임을 계기로 경영 혁신에 의욕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반면 `주인 없는 회사`였던 대한생명은 매각 절차를 밟으며 조직 추스리기에도 바빴던 상황. 그러나 3년이 지난 현재 나타난 결과는 예상을 벗어나고 말았다. 매출과 이익 모두 대한생명이 앞선 채 그 간격이 점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한ㆍ교보 매출 1조원 안팎 격차=대한생명과 교보생명의 격차는 보험사의 매출인 수입보험료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 2002회계연도(2002.4~2003.3) 수입보험료는 대한생명이 9조4,578억원으로 2001회계연도 보다 1,000억원 가량 늘었지만 교보는 8조4,748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3,000억원 가까이 줄었다. 매출액 격차가 1조원 가량 벌어진 것이다. 이익은 대한생명이 9,794억원의 당기 순익을 벌어들인 데 비해 교보는 3,566억원에 불과해 3배 가까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시장 점유율도 지난 2000회계연도에는 교보 22.1%, 대한 17.7%로 교보가 앞서 있었지만 2001회계연도에는 대한 19.8%, 교보 18.4%로 역전된 뒤 올해 3월말에는 대한 19.3%, 교보 17.2%로 더욱 벌어졌다.
설계사의 생산성을 나타내는 1인당 수입보험료 역시 대한생명의 3억3,000만원에 비해 교보생명은 3억2,000만원으로 뒤져 있다. 경영효율성 지표인 13회차 유지율(1년이상 유지된 계약비율)도 80.3%대 79.6%로 뒤떨어진다. 교보생명은 최근 3년 만에 여러 부문에서 3위로 밀려난 것이다.
◇교보 `신경영`으로 방향 선회= 그러나 이 같은 결과에 대한 교보측의 진단은 다소 다르다. 2000년 취임한 교보생명 신 회장은 지난해 `2010년 동북아 최고 보험사, 브랜드 선호도 1위 보험사 도약`이라는 야심찬 비전을 선포했다. 이를 위해 컨설팅사인 베인&컴퍼니에 350억원의 비용을 들여 경영자문을 의뢰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외형 위주의 `낡은 경영`으로는 세계적인 보험사로 도약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경영 체질을 바꾸는 작업에 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며 “삼성ㆍ대한생명 등과 외형경쟁은 신경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생명에 비해 매출규모가 줄어든 것은 이러한 `신경영`이 가져온 과도기적 현상일 뿐이며 비중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결국 교보측이 보는 문제의 본질은 `수익성과 효율중심의 새로운 경영전략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셈이며, 이에 대해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는 자평을 내리고 있다. 또 이러한 혁신적인 변화로 인한 일시적인 외형상의 부진은 감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보생명의 다른 관계자는 “앞으로 모집인력의 전문화와 판매창구의 다각화, 브랜드 가치 제고 노력 등이 성과를 보이게 되면 경영효율이 국내 1위로 올라서는 것은 물론, 세계적인 보험그룹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과연 `외형경쟁` 이 무의미한 것인지, 효율이 개선된 후 외형을 키우는 게 맞는 순서인지, 한화그룹에 편입돼 조직력이 강화된 대생을 따라잡을 기회가 쉽게 올 것인지 등등이 모두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생보업계의 한 관계자는 “교보가 대한과의 격차를 벌릴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며 “이대로 `만년 3위`로 주저앉는다면 최근의 선택이 문제였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교보생명측이 `신경영`의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하는 2005년경 국내 생보업계의 판도가 과연 어떻게 달라질 지 주목된다.
<박태준기자 jun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