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수 재임기록을 남기고 7년 만에 물러나는박용오(68)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최근 불거진 두산그룹 `형제의 난'으로 개인적인 오점을 남겼지만 야구 발전에는 적지 않은 업적을 남겼다.
정부가 낙점하는 관선 인사 관례를 깨고 8개 구단의 절대적 지지 속에 1998년12월8일 제12대 수장에 취임했던 박 총재는 다음 달 11일 골든글러브 시상식을 끝으로 총재직에서 사퇴할 예정이어서 꼭 7년을 채우는 셈.
역대 총재 중 유일하게 2차례나 재선돼 14대까지 역임했고 재임 기간도 초대와 2대를 지낸 서종철 전 총재의 6년 3개월보다 9개월이나 길다.
최장수 경력에 걸맞게 박 총재의 프로야구 발전 기여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국제통화기금(IMF) 여파로 급격한 관중 감소로 위기에 직면한 상태에서 중책을맡은 그는 취임 초기인 99년 자유계약선수(FA) 제도를 전격 도입, 프로야구판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그러나 2000년 선수들의 권익 향상을 도모한 선수협 사태가 불거졌을 때 `협의회가 발족되면 프로야구를 더 이상 안하겠다'는 강경 발언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하지만 박총재는 선수협 사태 타결이후 곧바로 지역연고제를 도시연고제로 바꾸고 모 그룹 부도로 어려움을 겪던 쌍방울 레이더스 문제를 처리하고 SK 와이번스 창단을 유도하는 정치력을 발휘했다.
특히 그 해 3월 프로야구 최초로 삼성증권과 30억원의 타이틀스폰서 계약을 하고 같은 해 11월 KBS와 중계권 독점 계약으로 수익 창출에 앞장섰다.
이와 함께 KBO 수익사업을 전담하는 KBOP를 설립해 안정적 수입원을 확보하는마케팅 능력을 보여줬고 대한야구협회와의 유기적 협조 속에 유소년 야구 등 아마야구 육성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해 선수들이 연루된 대형 병역비리가 터지면서 프로야구가 최대 위기를 맞았지만 대국민 사과와 재발 방지대책 마련으로 무사히 돌파, 올 해 300만 관중시대복귀로 연결시켜 프로야구 중흥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는 두산그룹 `형제의 난'에 휩싸이면서 결국 자의반 타의반으로 7년간정성을 쏟았던 프로야구계를 떠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