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6월25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스버그. 북군과 남군이 모여들었다. 15만명이 격돌해 7만여명의 사상ㆍ실종자를 낸 게티스버그 전투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참가인원은 5만여명. 61세부터 112세까지 참전용사들을 위해 주최 측인 펜실베이니아주는 280에이커(34만평)의 벌판에 7,000여개의 8인용 텐트를 쳤다. 육군은 2,000여명의 취사병을 파견해 야전식당 173개를 차렸다. 만약의 충돌에 대비해 기병대 병력이 외곽을 경비했지만 불상사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노병들은 손자ㆍ증손자뻘인 보이스카우트 대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잘도 어울렸다. 어제의 적이 식사와 맥주를 나누며 울타리에 걸터앉아 옛날을 얘기하고 먼저 죽어간 동료들을 위해 울었다. 행사의 절정은 사열과 행진. 북군과 남군이 각각 옛 부대기를 들고 행진하면 상대편은 경례를 올렸다. 한여름 37도까지 치솟은 폭염 속에 9,980명의 일사병 환자가 발생하고 9명이 사망했지만 미국인들은 ‘1913년의 대화합(the Great Reunion of 1913)’으로 이름 붙여진 이 행사를 통해 새로운 힘을 얻었다. 행사 마지막날인 7월4일 참석한 윌슨 대통령의 치사대로 남부와 북부는 ‘적이 아니라 함께 손을 잡은 형제와 동지’로서 거듭났다. 비록 남부가 전쟁 전의 상대적 소득수준을 되찾는 데 종전 후 10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지만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려는 노력 속에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국가로 올라섰다. 민족상잔의 비극인 6ㆍ25동란 발발 59주년. 남과 북의 긴장은 오히려 더해간다. 이 땅에는 언제나 화해의 날이 올까. 참전용사끼리 악수할 시간도 얼마 없다. 노병들이 세상을 떠나 게티스버그 전투 75주년 기념식에는 불과 1,845명(평균 연령 94세)만이 참석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