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기는 살아나는데…

미국 경제가 회복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미국 경제를 수렁에 빠트린 원흉으로 지목되던 제조업 부문에서 공장 주문이 늘어나고, 투자 마인드가 회복되고 있다. 자산 시장의 거품이 완전히 꺼졌는지에 대한 논란은 남아있지만, 연방정부와 중앙은행의 경기부양 조치의 효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 경기가 좋아지면, 정보기술(IT) 분야가 밀집한 한국 경제가 가장 먼저 신호를 받아 회복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패턴이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미국과 유럽, 일본 경제가 회생의 싹을 보이는 시점에 한국 경제가 침체로 빠져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정부는 선진국 경제가 좋지 않기 때문에 한국 경제도 동반 하락하고 있다며, 불황의 탓을 외부로 돌렸다. 그런데 지금 나타나고 있는 역전 현상을 볼 때 한국은 경제의 내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복의 기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뉴욕에 소재하는 경기사이클 연구소(ECRI)가 최근 한국이 경기침체 상태에 진입했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소는 세계 경제의 선행지수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 경제가 침체에 빠진 요인으로 크레딧 카드 부실 확대에 따른 소비 악화, 기업 투자 부진, 수출 약화를 들었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번 침체가 오일 쇼크와 10ㆍ26 사태가 겹쳐 발생한 79~80년의 침체와 97~98년의 외환위기때보다 심각하다고 진단한 것이다. 실물 현장에 일하는 사람들이 IMF 때보다 경기가 더 어렵다는 주장이 미국 분석기관에 의해 입증된 것이다. 문제 해결은 정부에 달려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경기 부양에 힘써 왔다. 미국의 부양정책은 기업에 초점을 맞췄다. 금리 인하로 기업의 자금 부담을 덜어주고 세금을 깎아주었으며 달러 약세를 통해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키운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경기 부양조치가 경제 구조를 왜곡시킨다며 미뤄오다가 최근에 부양책을 제시하고 있다. 선제적 부양조치가 적은 재원으로 큰 효과를 보는 것이 경제법칙인데, 실물경제가 꺾어진 다음에 미온적인 부양정책을 사용한 결과가 지금의 경제난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선진국 경기가 회복되길 기다리며 경기 부양 정책을 늦춘 한국 정부와 한국은행은 국제 경제가 선순환으로 돌아서는 시점에 도약의 기회를 놓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뉴욕=김인영특파원 inkim@sed.co.kr>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