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조용한 세상

연쇄살인에 휴먼스토리 접목
소통 부재의 시대 비극 그려
조의석 감독 서스펜스 작품
스릴러로서 긴박감 부족 아쉬워


세상에 적개심을 품은 범죄자가 변태적인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이를 민완형사가 뒤쫓는 것은 스릴러 영화에서 이미 한 장르로 일반화돼있는 공식이다. 외화로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던 '양들의 침묵', 그리고 국내에선 봉준호 감독의 두 번째 작품 '살인의 추억'이 그랬다. 이외에도 수많은 유사 영화들이 존재한다. 천편일률적인 살인 이야기가 앞서 영화들 만큼 뛰어난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영화에 사회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어야 한다. '양들의 침묵'이 뛰어난 것은 긴박한 서스펜스 위에 현대 미국인들이 세상에 느끼는 불안감을 버무려 놓았기 때문이다. '살인의 추억'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살인 이야기에 80년대 불안한 사회상에 대한 감독의 깊은 성찰이 어우러져 있다. '조용한 세상' 또한 같은 것을 시도하고 있다. 영화는 연쇄살인 이야기에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휴먼스토리를 첨가해 소통부재 시대의 비극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는 사진작가 정호(김상경). 초능력 때문에 어린시절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상처가 있는 그는 평생을 타인에게 마음을 닫고 산다. 그때 마침 위탁아동을 맡기로 한 삼촌 내외가 집을 비운 탓에 정호는 열한 살 소녀 수연(한보배)를 돌보게 된다. 마음을 열지 못하고 낯설게 서로를 마주하는 두 사람. 하지만 나이보다 성숙한 수연의 마음씀씀이 덕분에 정호도 조금씩 수연과 교감하기 시작한다. 한편 소녀들의 유괴 살해 사건이 잇따라 일어난다. 사건을 뒤쫓던 김 형사(박용우)는 소녀들의 신상을 조사하던 중, 유력한 다음 희생자로 수연을 지목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납치되는 수연. 정호와 김 형사는 서로 연합해 필사적으로 수연을 되찾고자 한다. 타인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정호를 통해 감독이 제사하는 소통부재의 메시지는 꽤 정결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면이 있다. 서로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자신을 닫아 잠그는 현대사회는 정호에게는 한없이 조용하다. 무너진 가정 속에서 음식 쓰레기를 주워먹을 정도로 방치된 어린아이의 공허한 표정 등이 보여주는 울림은 무게가 있다. 다만 영화는 스릴러로서는 한계를 노출한다. 얼굴 없는 범인을 쫓는 형사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전형적이며, 범인 또한 이런 장르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이다. 장르의 전형성을 극복하려는 감독의 노력이 아쉽다. 때문에 영화는 꽤 괜찮은 사회적 시각을 갖췄음에도 스릴러적 재미가 부족한 아쉬운 작품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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