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과 ‘적’

라이벌(rival)은 경쟁자, 적수를 뜻하는 단어다. 대개는 `선의의 경쟁`을 의미하는 말로 많이 쓰인다. 라이벌의 어원은 라틴어 `rivalis`다. 강(江)을 뜻하는 리버(river)와도 맥을 같이한다. 로마시대에 두 부족이 자그마한 개울을 끼고 생활을 했다. 이 두 부족은 서로 대립관계에 있으면서, 때로는 충돌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강에 물이 마르거나 홍수가 날 때는 합심을 해서 위기를 극복했다. 강은 그들 삶의 기반 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래된 말이 바로 라이벌이다. 이와 비교되는 개념이 적(enemy)다. 적은 반드시 섬멸의 대상이다. 적은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기 때문이다. 최근 몇 달 동안 우리 경제는 노사분규로 큰 홍역을 치렀고,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노사는 춘투(春鬪)를 넘어 하투(夏鬪)라는 용어까지 동원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더운 여름날을 지치게 만들고 있다. 정부 한 고위인사는 첨예한 노사대립을 해결하기 위해서 `네덜란드식 모델`를 도입해야 한다는 사견을 피력해 노사 양측 모두에게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사측은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일은 시기상조이며, 노측 또한 임금을 줄이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임금 삭감 없는 주 5일 근무제`도 노사간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아직 법제화 되기도 전에 금속노련에서 노사협약으로 합의됐다. 이는 앞으로 이어질 다른 업종의 노사협상에서 노측이 일종의 바이블로 삼을 것이 예상된다. 사용자 측이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사협상은 노사가 서로 라이벌이라는 관계에서 출발해야 한다. 노사는 공동의 장소에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며 함께 일한다는 것을 공감해야 한다. 과거 80년대 노사간에 극한 대립이 있을 때 노동자측에서 `에너미`라는 용어를 통용되기도 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나가면 모두가 망한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 단지 공생이라는 명분에 다가가는 것에 서로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 뿐이다. 노사협상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과정이다. 따라서 노사간 밀고 당기기식의 대립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강에 물이 마르거나 홍수가 날 정도의 상황이 닥치면 일단 공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노사간 극단적인 대치로 엄청난 홍역을 치른 사업장들이 새로운 노사관계를 정립하고 공생의 길로 나아가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때다. <강창현(산업부 차장) chk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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