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캘리포니아주의 아놀드 슈왈제네거 주지사가 최근 새크라멘토시에 있는 주 의회에서 경기침체로 세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그래프를 가리키며 의원들에게 새 예산안을 신속히 처리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새크라멘토=블룸버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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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를 맞아 심각한 재정난에 직면한 미국의 주 정부들이 살아 남기 위한 전쟁에 돌입했다. 상당수 주 정부가 공무원 감원, 복지 축소 등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고, 세원 확충을 위해 각종 명목으로 세금을 신설하거나 올리는 곳도 부지기수다.
주정부의 이 같은 노력이 효력을 발휘할 지는 미지수다. 경기 침체로 세수는 주는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재정적자 문제를 놓고 주 정부와 의회 간의 갈등도 속출해 예산안 처리 불발에 따른 부작용까지 잠복해 있다.
특히 미국 최대인 4,000만명이 넘는 인구를 보유한 캘리포니아주는 파산 가능성까지 제기될 정도로 사정이 심각해 향후 주 정부의 재정적자 문제가 미국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는 복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주 정부 재정적자, 얼마나 심각한가=주 의회 협의회의 집계에 따르면 미 50개 주의 새 회계연도(2009년7월~2010년6월) 예산부족액은 1,210억달러에 이른다. 이는 올 회계연도 예산부족액인 1,024억달러보다 18% 가량 늘어난 것이다.
캘리포니아주 정부의 경우 이번 회계연도(2008년7월~2009년6월)에 240억달러, 다음 회계연도에는 최대 400억 달러 가량의 재정적자가 점쳐지고 있다. 문제는 경제 여건상 재정적자를 해결할 방안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주 정부 입장에서는 당장 대대적인 비용 절감과 세율 인상 등이 필요하지만 ▲10%를 넘는 높은 실업률 ▲주택 시장 침체 ▲소비심리 위축 등으로 세수 감소가 예상돼 돌파구를 마련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 지난 5월 실업률을 보면 미시간주 14.1%, 사우스캐롤라이나주 12.1%, 캘리포니아 11.5% 등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경기 상황을 감안하면 주 정부들의 재정난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연방정부 경기부양자금을 받아 벌이는 사업도 지원기간이 끝나고 나면 고스란히 주정부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우려했다.
재정적자가 심각한 주 정부일수록 예산안 처리가 지연되는 점도 부담이다.
CNN머니에 따르면 오는 7월부터 새 회계연도를 시작하는 46개 주 정부들 중 19개 주 정부가 의회와의 이견으로 예산법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애리조나주의 경우 공화당 출신의 잰 브루어 주지사가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의회가 주지사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이유로 예산안을 넘기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다. 이밖에 캘리포니아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등도 예산안 처리에 난항을 겪고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 아놀드 슈왈제네거 주지사는 "주 의회가 새 예산안을 신속히 처리하지 않을 경우 오는 7월28일께 재정이 완전히 바닥을 드러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 정부, 자구책 마련 비상=주 정부들은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와이는 향후 2년 동안 공무원들을 상대로 월 사흘씩 강제휴가를 실시하기로 했고, 아이다호에선 사상 처음 공립학교 지원금을 줄이기로 했다.
이밖에 캘리포니아는 죄수의 형기를 앞당기고 주립공원 200개를 폐쇄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고, 일리노이는 매년 평균 1만여건씩 발생하는 저소득층 장례식 지원금 1,500만달러를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일부에서는 이런 재정위기 회피 노력이 공공 서비스 및 복지 예산 축소로 이어지면서 빈부 격차 확대로 귀결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세금 개발 경쟁도 뜨겁다. 캘리포니아와 오리건은 의료용 등으로 마리화나 거래를 합법화한 뒤 세금을 매기는 일명 마리화나세 도입을 검토 중이고, 데이비드 패터슨 뉴욕주지사의 경우 최근 '아이튠스(iTunes)' 등을 통해 내려 받는 디지털 콘텐츠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일명 '아이팟 세금'을 신설을 제안했다.
이밖에 아칸소ㆍ미시시피 등 20개 주가 담뱃세를 인상하는 등 기존 세금의 세율 인상도 이어지고 있어 세금 과세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도 커지는 상황이다.
◇연방정부, 개입 자제 방침=데이비드 액설로드 백악관 선임고문은 최근 캘리포니아의 주 재정적자 문제와 관련 "우리가 한 주를 위해 하는 일은 그것을 원하는 다른 주에도 똑같이 해야 할 것"이라면서 "연방정부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캘리포니아의 재정문제에 연방정부가 개입하면 안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불개입 원칙을 지킬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이와 관련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오바마 행정부가 설령 캘리포니아에 예외를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주 정부에게 잘못된 메시지가 되지 않도록 아주 까다로운 지원 조건을 내걸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과거사례를 보면 지난 1840년대 펜실베이니아, 미시시피, 메릴랜드 등 일부 주정부가 과도한 빚으로 홍역을 치루기도 했지만 파산까지 가지는 않았다. 현재 재정상태가 가장 열악한 주로 꼽히는 캘리포니아의 경우도 최근 신용등급이 강등됐음에도 정크본드보다 4단계 높은 'A-'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