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10월6일] 첫 유성영화 재즈싱어 상영

19세기 말 과학과 예술의 사생아로 태어난 영화는 오늘날 문화산업의 대명사로 불린다. 1895년 12월28일 뤼미에르 형제가 파리 그랑카페에서 10초짜리 필름 ‘열차의 도착’을 유료로 상영한 후 영화는 100년간 가장 번창한 문화산업으로 발전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화는 부와 인기의 상징이며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선동과 교육의 수단으로 활용돼왔다. 영화는 사람들을 웃고 울릴 뿐 아니라 사상과 행동 등 생활 구석구석에 깊은 영향을 미치며 성장하고 있다. 영화가 처음 선보였을 당시만 해도 아무도 움직이는 그림에서 소리가 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1927년 10월6일 영화는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날을 맞는다. 이날 미국 뉴욕의 워너 극장에서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가 상영된 것. ‘재즈 싱어’는 대사와 음악, 기타 음향을 합성한 최초의 극영화였다. 이때부터 유성영화 시대가 시작됐다. 이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는 최초의 뮤지컬 영화이기도 했다. 알 존슨이 카메라 앞에서 ‘마미’를 부름으로써 20년 넘게 할리우드와 전세계를 지배할 뮤지컬 영화의 기원이 됐다. 존슨의 선명한 대사는 미국영화협회(AFI)가 뽑은 100대 영화 명대사에도 포함될 만큼 관객들을 흥분시켰다. 이 영화 때문에 당시 마이너 영화사였던 워너브러더스는 새로운 흥행의 강자로 떠오르게 됐다. 워너가의 네 형제가 모여 만든 워너브러더스는 ‘재즈 싱어’를 선보이기 전까지는 파라마운트의 라이벌 축에도 못 끼는 군소 제작사에 불과했다. 그러나 ‘재즈 싱어’ 이후 워너브러더스는 할리우드의 치열한 유성영화 개발 싸움에서 승리, MGMㆍ파라마운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대 스튜디오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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