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SectionName(); [오늘의 경제소사/ 12월 28일] 링컨, 은행 전쟁 권홍우편집위원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1861년 10월28일, 뉴욕 은행연합회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에게 통고문을 보냈다. 링컨은 아연실색했다. '부채를 금(金)으로 갚으라'는 요구가 담겼기 때문이다. 불태환지폐인 그린백(greenback)을 찍어내 남부와의 전쟁에 쏟아붓는 마당에 금이 있을 턱이 없었다. 은행들은 왜 링컨의 등에 칼을 겨눴을까. 국제금융자본과 한통속이었기에 그랬다. 당시 초강대국인 영국이 세계를 지배하던 근간은 금본위제도와 자유무역. 각국의 금이 영국으로 몰리게 하는 두가지 수단이 북부의 불태환지폐와 보호무역주의로 위협받자 돈줄로 링컨을 압박한 것이다. 베어링과 로스차일드 등 영국계 자본의 전위대였던 뉴욕의 은행가들은 까다로운 대출 조건도 달았다. 연 24~36% 이자를 요구한 것. 링컨은 여기에 굴복하지 않았다. 부채도 당당히 금으로 갚았다. 빚에 쪼들리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금융 혁신과 국민들의 성원 덕분이다. 자본가들의 요구를 거부해 대중의 지지를 받은 링컨은 저금리 국채를 발행하고 그린백을 더 찍어내 위기를 넘겼다. 국채 액면가를 낮은 가격으로 쪼개 여유가 많지 않은 일반인들도 매입할 수 있도록 유도한 필라델피아 출신의 은행가인 제이 쿡의 아이디어로 북부는 많은 자금을 어렵지 않게 모을 수 있었다. 링컨이 버틴 결과는 익히 아는 대로다. 승리와 분열 위기 극복. 독일수상 비스마르크는 링컨이 은행전쟁을 치러야 했던 배경을 '강력한 단일 국가가 아니라 분열된 미국을 원했던 영국의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봤다. 비스마르크는 이런 글도 남겼다. '금융자본의 심기를 거스르며 그린백을 발행했을 때 링컨의 암살은 이미 결정됐다.' 링컨을 옥죄던 뉴욕은행들의 '전쟁'은 여전하다. 국제금융자본의 주력으로 성장해 세계경제를 흔들고 있으니까.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