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검찰이 부르짖는 말이 “정치적 고려 없이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검찰이 정치적 고려 없이 수사하겠다고 한 사건 치고 정치적 의혹을 속 시원히 밝힌 경우는 기억에 없는 것 같다. 검찰 내부적으로 ‘이 사건이야말로 정말 정치적 고려가 개입되지 않았다’고 하는 사건이 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자에게는 생소한 게 틀림없는 사실이다.
임채진 검찰총장 역시 ‘대통령 처형’이자 대통령 부인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이기도 한 김옥희씨의 공천 비리 의혹을 파헤치는 수사팀에 “일체의 정치적 고려 없이 엄정하고 철저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김씨는 공천 명목으로 30억원이라는 거액을 받았다가 실패로 돌아가 대부분은 돌려주고 5억원 정도는 개인 용도로 썼다는 혐의로 1주일째 수사를 받고 있다. 김씨가 영부인의 친언니 행세를 하고 다녔다지만 70살이 넘은 노인에게 30억원이라는 거액을 선뜻 맡긴 이해할 수 없는 이유와 김씨에게 갔던 30억원이 돌고 돈 흐름 등은 검찰이 밝혀야 할 우선 과제다.
하지만 검찰이 이보다 앞서 해명해야 하는 것들은 김씨에게 돈을 주며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으려는 ‘의사’가 분명했던 ‘공직선거법상 피의자’였던 김종원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을 단순 사기피해자로 풀어준 부분이다. 물론 김 이사장이 김씨에게 사기당했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었다고는 치더라도 검찰이 당초 공선법 위반 혐의로 이들을 긴급체포한 것을 보면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리고 오비이락일 수도 있겠지만, 검찰이 김씨 사건 수사를 정동기 청와대 민정수석과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우병우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에게 맡긴 점이나 브로커 김씨의 변호를 정 수석이 몸 담았던 법무법인의 동료 변호사가 맡은 점 등도 오해가 없도록 해야 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청와대 기록물 유출사건 등 뜻하지 않게 사건이 몰리면서 김씨 사건을 수사할 여력이 있는 마땅한 수사팀이 없어 금조2부에 배당할 수밖에 없었다” “우 부장검사의 경우도 민정수석과 한때 근무한 경력을 따져 입맞추기 수사라고 지레짐작하는 것도 인신공격적이고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우 부장검사는 검찰 내에서 정치적 고려 없이 수사 잘하기로 손꼽히는 검사”라는 검찰의 말도 수긍은 간다.
그러나 검찰이 때마다 하는 “정치적 고려 없이 수사하겠다”는 말이 장사꾼의 “밑지고 장사한다”는 말처럼 허언이 되지 않도록 이번 만큼은 수사결과로 증명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