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 혁명] 1-4. 결제혁명의 그늘

기술의 발달은 인류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지만 그 이면에는 항상 부작용을 달고 다닌다. 바로 인간이 편리하게 개발한 기술이 결국 인간을 속박할 수 있는 것이다. 20세기 들어 많은 작가들은 이 같은 두려움을 `빅 브라더` 같은 존재나 `매트릭스`와 같은 영화를 통해 표현한다. 전자결제도 마찬가지다. 인간에게 `언제(Anytime), 어디서(Anywhere), 어떤 방식(Anyhow)`으로든 마음대로 물건을 사고 거래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지만 뒤집어 보면 언제 어디서든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감시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또 변화의 속도가 너무나 빨라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요즘 주요 일간지들의 사회면을 보면 결제혁명의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넘쳐나고 있다. 물론 그 대부분은 일반인들이 불안해하는 기술 자체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오ㆍ남용이나 인식부족으로 발생한 사고들이다. 결국 결제혁명의 그늘은 `기술`보다는 `사람`에 더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기술을 따라잡지 못하는 윤리의식=지난 6월 한 초등학생이 어머니의 카드로 몰래 결제한 후 꾸중이 두려워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회적으로도 큰 파문을 일으킨 이 사건은 한 초등학생이 인터넷을 통해 아바타에 필요한 소품들을 어머니의 카드로 결제하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이 초등학생은 아바타의 옷을 사고 치장을 하는데 무려 170만원이라는 돈을 써버린 것이다. 이처럼 전자결제가 주는 편리함은 사이버공간에서의 도덕성과 인식의 결여로 발생하는 사건사고 앞에 무기력하다. 돈을 쓴 초등학생에게 어머니의 신용카드는 하나의 숫자로 조합된 플라스틱에 불과했다. 또 주민등록 번호와 ID라는 새로운 기호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인터넷의 익명성은 어린아이의 판단력을 혼란스럽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밖에 다른 전자결제관련 범죄들도 기술의 치명적인 약점을 이용했다기 보다는 인간이 운용하는 운용시스템 상의 허점을 노린 것들이 대부분이다. 지난 5월 모 신용카드사 직원이 400여명의 고객정보를 빼돌린 것이 가장 좋은 예다. 이런 전자결제관련 운영자들이 빼돌린 정보는 카드로 결제할 수 있는 한도액의 20~40%가량의 가격으로 인터넷 상에서 팔리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시스템 운영자들의 범죄는 앞으로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 공병철 사이버감시단장은 “전자결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에 있다”며 “기술의 발전에 걸맞는 도덕ㆍ윤리체계를 갖추도록 노력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자결제, 사기거래에 무방비=신뢰와 신용은 결제혁명의 밑바탕이다. 상점에서 물건을 고른 후 스마트카드나 전자지갑 등을 통해 직접 결제하는 경우도 있지만, 흔히 전자결제는 인터넷과 통신망을 기반으로 한 비대면(非對面) 거래를 말한다. 그러나 이 같은 비대면거래는 고객을 속이는 사기판매에는 거의 무방비 상태나 다름이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지난 2월 물건을 반값에 판다며 소비자들을 유인해 400억원대의 사기행각을 벌인 인터넷 쇼핑몰 하프플라자 사건이다. 이 후에도 이 같은 사기사건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주로 노트북, 냉장고, 승용차 등 고가의 제품을 파격적인 할인가격을 살 수 있다고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이 사이트들은 고객들이 돈을 납입하면 상품은 보내주지 않고 돈만 챙긴 뒤, 사이트를 폐쇄하거나 잠적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 소비자보호원은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석달동안 피해신고가 접수된 인터넷 쇼핑몰수가 무려 192개나 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 같은 인터넷 사기판매를 원천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 인터넷 쇼핑몰은 별도의 허가없이 누구나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적은 자본으로라도 창업이 가능해 사기꾼들은 언제든지 새로운 쇼핑몰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소비자보호원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이 같은 인터넷 쇼핑몰의 사기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다”며 “지나치게 낮은 할인가격을 부르는 쇼핑몰은 일단 의심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결제정보의 집중 `숨을 곳이 없다`=언제 어디서든 신용카드나 전자지갑, 혹은 네트워크 머니로 결제를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결제정보가 한 곳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신용정보를 집중시켜 고객에 대한 신용도를 측정할 수 없다면 이 같은 신용거래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이 기능에 민간 신용정보회사까지 참여하고 있다. 이 민간 신용정보회사들의 정보망은 이미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을 넘어 확대되고 있다. 그들은 핸드폰이나 인터넷 이용요금 정보에서부터, 각종 공과금 납부내역, 대출액과 연체여부, 또 신용카드 승인내역까지 모든 정보를 한 곳에 집중시키고 있다. 민간 신용정보업체들은 이 정보들을 이용해 한 개인의 예상지출액부터 소비패턴까지 모든 것을 분석한 자료들을 백화점과 같은 유통업체들과 서비스업체에 마케팅 자료로 넘겨준다. 특히 1만원이하의 소액까지 전자결제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이 같은 정보집중현상은 더욱 강화됐다. 결국 거의 모든 사람들의 경제생활이 낱낱이 공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점수까지 매겨져 관리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들이 불법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사생활이 보호받지 못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경제적 피해를 입게될 소지도 크다. 임병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개인의 사생활보호와 정보공유의 한계에 대한 명확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이러한 전제가 없는 한 기술의 발달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조의준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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