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이슈] 물러나는 휘트먼 CEO

e베이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운 '여걸'
10년전 경영맡아 직원 1만명 전자상거래기업으로 우뚝
무리한 사업 확장에 최근 성장세 둔화·주가 하락 초래
주식등 자산 15억弗 부호… 캘리포니아 주지사 출마설



"웹 비즈니스는 3개월에 한번씩 변하고 도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수 없습니다. 도전을 하다보면 가끔 헛발을 딛거나 틀릴 수도 있겠지요. 실패는 피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가렛 휘트먼(52) e베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999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CEO다운 선견지명으로 자신도 언젠가 발을 헛디딜 때를 염두해둔 발언일까. 그가 지난 23일 10년간 몸담은 e베이의 CEO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힌 뒤 일각에선 그의 사임에 대해 "뛰어난 처세술"이라며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최근 e베이가 연이은 실적 부진을 겪는 상황에서 "어느 기업이라도 한 CEO가 10년이상 머물면 경직될 수 밖에 없다"며 스스로 아름다운 퇴장을 택했다는 것이다. 휘트먼 CEO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특히 e베이가 최근 들어 주가가 바닥을 치며 연이은 실적부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는 비난의 화살을 면치 못하고 있다. 다만 그를 빼고는 e베이의 성장을 논할수 없듯, 휘트먼은 무명의 기업을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낸 타고난 경영이라는 사실에는 누구도 이론을 달지 않는다. 1997년 휘트먼 CEO는 여느 미국 아이비 리그 경영대 출신과 같이 유명 컨설팅 회사를 거쳐 기업인으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휘트먼이 e베이에 합류하기 전, 세계적인 컨설팅회사인 베인앤컴퍼니에서 일했고 그에 앞서 장난감 회사 하스브로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러던 그에게 직원 29명에 불과한 실리콘 밸리의 중소 벤처기업 사장이었던 피에르 오미다이어 e베이 창업자로부터 회사경영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그의 대답은 '노(No)'였다. 하지만 당시 신생기업이었던 e베이를 둘러본 후 휘트먼은 마음을 바꿨다. e베이가 소비자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획기적인 사업 아이템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가 취임하고 몇 달 뒤 e베이는 7억3,500만달러 규모의 기업공개(IPO)를 했고 3년만에 매출은 87%가 뛴 4억2,000만달러에 달하며 승승장구했다. 휘트먼 CEO의 지휘 하에 e베이는 현재 직원수 1만1,600명, 한국을 포함해 30여개국에 진출한 글로벌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우뚝섰다. 휘트먼 CEO는 e베이를 통해 인터넷 시장에 소비자 문화를 형성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미국에서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은 생소한 개념이었다. 더구나 휘트먼 CEO는 복잡한 프로그래밍을 섭렵한 컴퓨터 전공자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전자 상거래 시장 속의 소비자 코드를 적절하게 읽어냈다. 철저히 방문자의 입장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품목들을 가장 찾기 쉬운 방법으로 e베이 사이트를 개선했다. 매달 임원 회의를 열어 다른 경쟁사이트와 e베이를 비교한 보고를 받았다. 여성 CEO로서 주부들을 상대로 한 마케팅도 성공적으로 해냈다. 창업자 오미다이어와 함께 휘트먼 CEO 영입에 힘쓴 로버트 케이글 벤치마크캐피털 대표는 "e베이라는 이름을 드높일수 있는 '브랜드 빌더'가 필요했다. 기술적인 지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휘트먼은 그런 면에서 소비자에 대한 경험이 몸에 배인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2002년 휘트먼 CEO는 온라인 결제사업자인 페이팔을 15억달러에 인수했다. 이는 e베이에 엄청난 비용절감 효과를 가져다줬다. 휘트먼 CEO는 또 해외로 눈을 돌려 e베이를 글로벌 사이트로 대폭 확장했다. e베이는 확장 초기인 2001년에 한국에 인터넷 경매업체인 옥션을 인수했다. 하지만 사업확대 규모가 점점 커지자 e베이는 그 무게를 쉽게 감당하지 못했다. 2005년 26억달러에 사들인 인터넷 전화 '스카이프'는 e베이의 사상 첫 적자를 초래했고, 지난해 말 회사측은 9억달러를 손실처리했다. 인터넷 전화를 통해 전자상거래에서 한층 앞선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휘트먼 CEO의 판단은 그야말로 너무 앞선 기대에 그친 셈이다. e베이의 주가는 지난 2004년에 비해 54%나 떨어져 지난 25일 주당 26.83달러에 거래됐다. 다행히 지난 4ㆍ4분기 실적은 페이팔과 옥션 거래에서 매출 호조로 순익이 53% 급등했고, 스카이프의 매출도 인맥사이트인 마이스페이스와 계약을 맺은 영향으로 76%나 올랐다. 오는 3월 휘트먼 CEO의 바통을 이어받는 존 도나후 시장총괄 겸 경매사업 본부장은 기업회생의 막중한 책임을 안게 됐다. 휘트먼 CEO의 자산은 스톡옵션을 합해 15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여성 CEO로선 드물게 지난 몇 년간 연속 미국 주간지 포브스의 부호 리스트에 올랐다. 그는 재산의 일부를 매년 모교인 스탠포드대학에 기부하는 등 자선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또 미트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와 한 직장에 있었던 인연으로 그의 공식 지지자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퇴임 후 거처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휘트먼 CEO가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출마해 정계에 입문한다는 설이 LA타임스 최근 보도돼 눈길을 끌었다. 휘트먼 CEO의 호탕한 기질은 진취적인 성품을 지닌 어머니를 닮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휘트먼 형제들을 데리고 캐나다와 알래스카로 캠핑을 떠나기도 했다. 자연에 흡수된 삶을 즐기는 휘트먼 CEO는 의사인 남편과 두 아이들과 함께 호화저택이 아닌 허름한 목재 가옥에 살다가 최근 들어 리모델링한 새 집으로 이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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