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지역에 국한됐던 부녀회를 통한 가격담합이 확산하고 있지만 규제할 마땅한 법률적 근거가 없어 정부가 적절한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가격담합 및 소비자 보호 관련 법이 소비자에 손해를 주는 사업자를 규제하는데초점이 맞춰져 있어 소비자 간에 피해 주는 경우에 적용할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부녀회 공공연한 담합..확산 추세 부녀회를 통한 가격담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제는 서울 강남과 분당 등 일부 지역에서 횡행했던 사례들이 서울 강북 등으로 확산하고 있어 서민들의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강북 뉴타운 개발 계획 등으로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 강북 지역의주민들이 `우리도 높은 가격으로 집을 팔자'며 부녀회 가격 담합에 가세하고 있다.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단지 반상회에서는 일정 가격 이하로는 보유 아파트를매물로 내놓지 말자는 의견이 쏟아졌다.
반상회 참석자는 "강남.분당.일산처럼 아파트 가격을 관리하자는 의견이 나왔다"면서 "단지 1개동 차원의 담합은 실효성이 없으니 우리 동이 앞장서 다른 동도 따라오도록 하자는 견해가 제시됐다"고 말했다.
서울 광진구 아파트단지에서 중개업을 하는 최모 씨는 "반상회나 아파트, 단지내부 모임을 통해 일정한 가격 이하로 집을 팔지 말자고 의견을 모은 뒤 매물을 내놓는 경우가 있어 아파트 값이 3천만∼5천만원씩 갑자기 오른 적이 있다"고 전했다.
최씨는 "한 단지에서 가격을 관리하기 시작하면 옆 단지에서도 따라하기 때문에결국 그 지역 아파트 값 전체가 오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중개업자 입장에서는 특별한 이유없이 갑자기 가격이 오르면 거래가 안되지만 집을 팔아달라는 사람들이 모두 가격을 올리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며 "입주 선호도가 높은 아파트 단지일수록 부녀회의 힘이 막강하다"고 덧붙였다.
서울 마포구의 중개업자 정모 씨는 "강북의 시가 6억∼10억원대의 아파트에서는부녀회를 통한 담합이 순조롭게 이뤄진다"며 "중개 수수료가 높은 이런 아파트의 거래를 중개하기 위해서는 부녀회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전국부동산중개업협회 관계자는 "가격담합은 이미 서울시내 전지역으로 확산돼있다"면서 "담합된 가격에 거래가 이뤄지기 시작하면 부녀회를 통해 조정된 가격이실질적인 거래 가격이 된다는 점이 부녀회를 담합으로 유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내집마련 서민 발만 동동 부녀회의 가격 담합은 급한 돈이 필요해 갑자기 아파트를 팔아야 하거나 내집마련을 위해 아파트를 구입하려는 서민에게 손해를 줄 수밖에 없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급하게 아파트를 팔아야 하지만 부녀회의 압력을 받은 중개업자들이 낮은 가격으로 거래를 해줄 수 없다며 판매를 의뢰한 고객에게 오히려 사정하는 사례도 있다고 중개업자들은 전했다.
일산의 김모 씨는 "부녀회에서 거래 가격관리는 물론 집값 내려간다며 빨래도밖에 널지 말아라, 장독대도 치우라는 간섭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매매계약을 했다가 부녀회의 압력을 받은 주인이 계약 가격으로는 아파트를팔 수 없다며 매매 의사를 철회, 새 아파트 매입을 위해 옛날 아파트를 파는 계약까지 끝낸 사람이 급하게 입주할 아파트를 찾는 경우가 있다고 중개업자들은 소개했다.
부녀회의 압력이 횡행하자 이웃 주민 간에 언쟁이 발생하거나 중개업자가 아닌인터넷이나 생활정보지 등을 통해 자신의 집을 팔겠다고 광고하는 주민들도 있다.
◆정부 "규제 근거 없어"..속수무책 정부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 적절한 대책을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마땅한대안이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2002년 서울 강남의 아파트 부녀회가 지역 부동산중개업자들에 일정 가격 이하로 아파트를 팔지 못하도록 강요, 파문이 발생하자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조사를 했지만 `처벌하기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격 담합에 대한 제재 권한이 있는 공정위는 부녀회를 통한 아파트 매매가격담합 제재에 대해 법적 근거가 없어 현실적으로 규제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이 사업자이기 때문에 사업자가 아닌 개인을 규제하기는어렵고 소비자와 소비자의 관계에 대해서는 공정법에 나와있지 않다는 것이다.
소비자보호 정책을 총괄하는 재정경제부의 입장도 비슷하다.
재경부 관계자는 "내부 논의를 했지만 부녀회라는 조직이 사업자가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보호법으로 규제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소비자보호원 관계자도 "부녀회 담합에 따른 피해를 법률적으로 확정하기가 어렵다"며 "부녀회의 압력에 의해 특정 개인이 계약을 파기해도 계약금을 물어주면 법률적으로는 피해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형사상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개인들의 문제를 정부가 법률로 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지만 집 한 채를 팔면서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문제가 있는 만큼 정부가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이상원.이 율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