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9년 5개 신도시 가운데 최초로 건설돼 지금까지도 신도시의 상징으로 불리는 분당 시범단지는 어떻게 개발됐을까. 업계에 따르면 5개 신도시 아파트 중 주공아파트를 제외한 나머지 민간아파트용지는 대부분 지금처럼 추첨방식으로 건설업체에 분양됐었다. 그러나 유독 분당 시범단지는 다른 방식으로 공급됐다. 시범단지 설계를 건설업체들에 맡겨 경쟁을 시키는 것이었다. “설계 결과 높은 점수를 받은 4개 업체가 시범단지 내 4개 블록의 아파트용지를 나눠 받았다”는 게 당시 현대산업개발 주택사업담당 이사였던 이희연씨의 설명이다. 삼성ㆍ한신(1단지), 우성(2단지), 한양(3단지), 현대(4단지)가 바로 이 방식으로 확정된 아파트 브랜드였다. 특히 당시 설계공모 결과 1위를 한 현대산업개발은 지하철역에서 다소 먼 4단지를 선택해 화제가 됐었다. 이씨는 “지하철역에서 멀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공원(중앙공원) 조망권을 갖춘 단지가 더 가치가 높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미 일부 건설업체들은 80년대 말부터 조망권 가치에 눈을 떴던 셈이다. 신도시 건설사업은 숱한 신흥 명문 주택업체들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바로 우방ㆍ청구ㆍ건영 등 대구 지역에 기반을 둔 3인방 업체들이다. 이 업체들은 80년대 중반 중계동 택지개발사업에 대거 진출해 수도권 진출의 기반을 닦은 뒤 분당ㆍ일산 등 신도시 아파트를 통해 주부들로부터 대형업체 못지않은 인기를 끌며 중앙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LIG건영(당시 ㈜건영)의 한 관계자는 “지방업체들이 낮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차별화된 외관ㆍ평면 설계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성냥갑 같던 아파트 외관을 라운드로 처리하는가 하면 물건을 쌓아놓는 공간 정도로 인식되던 발코니를 생활공간으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로 주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그 당시만 해도 지상 1m 정도 높이까지는 막아놓았던 발코니 외벽을 바닥까지 모두 터 개방감을 확보한 것도 이들 업체의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신도시를 기반으로 급성장한 지방업체들의 고속질주는 오래가지 못했다. 신도시 개발 완료 후 집값 안정으로 신규분양시장이 침체되면서 사업다각화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유통ㆍ레저사업이 잇따라 실패한데다 97년 말 IMF 사태가 터지면서 연이어 부도로 쓰러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시 신흥 주택건설업체들은 급격한 성장에만 익숙해 있다 보니 시장침체에 따른 위기관리 능력은 전무했다”고 말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IMF 체제 이후 10년이 흐른 지금 일부 업체는 최근 경영위기를 딛고 새로운 재기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건영이 LIG그룹에 인수돼 LIG건영으로 이름을 바꾸고 화려하게 부활했는가 하면 ㈜우방은 쎄븐마운틴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돼 C&우방이라는 새 사명으로 주택사업 명가 재건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