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2월14일] 루스벨트 & 사우드 권홍우 편집위원 1945년 2월14일, 수에즈운하 내 크레이트 비터 호수. 미국 중순양함 퀸시호 갑판에 루스벨트 대통령과 이븐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마주 앉았다. 얄타회담 귀환길의 루스벨트는 사우드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췄다. 예정된 두 시간을 넘어 다섯 시간 동안 이어진 회담 내내 좋아하는 담배도 참았다. 사우드가 젊은 시절의 총상으로 다리가 불편하다고 말하자 루스벨트는 여분의 휠체어를 선물했다. 기분이 좋아져 ‘우리는 쌍둥이처럼 비슷하다’고 화답한 사우드는 휠체어를 평생 소중하게 간직했다고 전해진다. 루스벨트뿐 아니라 미국은 접대에 온신경을 기울였다. 회담장소까지 사우드와 수행원 48명을 호송한 구축함 머피호에는 양탄자 깔린 천막이 설치되고 냉동육 대신 살아 있는 양이 실렸다. 석유가 발견됐다고 하지만 당시 사우디는 영국의 원조로 연명하던 나라.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 루스벨트는 왜 사우드를 만났을까. 중동산 석유 없이는 전후 미국의 지도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상회담의 결과는 나흘 후 열린 처칠과 사우드간 회담이 대신 말해준다. 퀸시호 정상회담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된 처칠은 비행기로 사우드를 찾아가 영국의 기득권 유지를 요구했다. 권고를 무시한 채 국왕의 면전에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무리한 여행일정 탓인지 루스벨트는 사우드와의 회담 2개월 후 사망했지만 중동에서 영국이 누리던 영향력은 미국이 가져갔다. 처칠이 선물한 롤스로이스 승용차도 소용없었다. 원유 수급의 고비마다 미국 입장을 ‘쌍둥이처럼’ 옹호한다는 사우디의 전통도 이때부터 생겼다. 요즘도 각국 정상들은 석유를 찾아 세계를 누빈다. 국가원수 자원외교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됐다. 1945년 밸런타인데이의 함상 정상회담. 입력시간 : 2007/02/13 1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