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구제하기 위한 지원대책을 또다시 발표하면서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이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금융시스템으로 번지지 않도록 관리를 잘 하라” 고 한 발언이 예사롭지 않다.
카드위기 등에 따른 개인의 신용위기에 이어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금융불안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정부의 경제수장이 감지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장기불황은 개인과 자영업자 그리고 중소기업의 신용 및 금융위기로 번져나갔다. 중소기업의 위기를 방치하면 그것은 일본식 장기불황의 시작을 의미한다. 당국이 이런 악순환을 차단하기 위해 잇단 대책을 발표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다.
이번 대책에서 특히 눈에 띄는 조치는 정책자금 대출절차의 대폭 간소화다. 내년부터 정책자금을 대출 받으려는 중소기업은 중소기업진흥공단 한곳에만 서류를 제출하면 중진공 이나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대출 절차를 간소화해도 정작 은행들은 중소기업 대출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국은행의 2분기 자금순환동향에 따르면 대기업에만 대출하고 중소 및 벤처기업은 외면하는 은행들의 대출관행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금융시장이 자금 중개 기능을 제대로 못해 돈이 기업으로 흐르지않고 금융권 안에서만 맴도는 ‘돈맥경화’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은행의 일방적인 대출회수와 축소로 그렇지않아도 자금난에 빠진 중소기업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는 불만까지 사고 있다.
물론 은행들도 나름대로 사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극심한 내수침체로 내수업종의 중소기업의 매출감소와 재무상태악화가 명백히 드러나고 있는데 여신위험관리에 나서는 것은 은행의 기본적인 업무이기 때문이다.
부실여신을 제때 막지 못해 엄청난 은행 구조조정을 겪은 외환위기의 교훈을 벌써 잊었느냐는 항변도 만만치 않다. 중소기업 대출회수를 줄이고 싶어도 당국의 감독규정 때문에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따라서 정부가 대출회수를 어렵게 하도록 은행내규 개정을 요구하는 등 은행들만 야단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이미 발표한 1조원 규모의 중소기업투자펀드 조성, 대출만기 장기화, 신용보증지원 확대 등 신속하고 제대로 시행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가능성 없는 중소기업은 과감히 구조조정해 은행들이 위험성이 적은 기업에 자금을 대출하도록 적극 유도해야 할 것이다. 또 유동성비율 의무 등 여신건전성 강화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면 일부 완화해줘 은행들의 숨통을 틔워줄 필요도 있다.
은행의 위험부담을 줄여주면서 가능성이 있는 중소기업은 담보 없이도 과감하게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푸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