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정부의 증권산업 규제완화 방안의 목적은 ‘금융산업의 균형발전 유도’와 ‘금융시장의 자금중개 기능 제고’이다.
정부가 금융산업의 균형발전을 위해 증권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의지를 갖게 된 것은 그동안 증권산업이 균형치에 못 미치는 영업환경에 놓여 있었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사실 국내 금융산업은 지난 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 쪽으로 중심축이 과도하게 이동해 있는 상태다. 은행권 대 비은행권의 자산비중은 97년 말 4대6에서 올해 6월 말 기준 6대4로 역전됐다. 특히 은행과 증권사간의 격차는 더욱 심각한 수준으로 심화돼 97년 말 증권사의 20배 수준이던 은행의 평균 자산규모가 이제는 50배를 초과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상업은행의 평균 자산규모는 증권사의 2배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의 증권산업이 우리나라에 비해 월등히 ‘균형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소위 투자은행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취임 이래 우리나라 증권사들이 선진국 투자은행 업무영역을 개척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왔다. 이번 규제완화 방안의 핵심 내용들도 결국 증권사들이 투자은행 영역으로 업무영역을 확대할 수 있는 성장기반을 마련해주기 위한 정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증권사들이 투자은행으로 성장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정부는 ‘금융시장의 자금중개 기능 제고’라는 표현 안에 그 당위성을 함축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금융시장의 자금은 낮은 위험의 투자대상을 찾아 움직이는 위험회피 성향이 두드러지게 강화됐다. 이는 은행권의 ‘불균형적인’ 성장과도 무관하지 않다. 은행의 자금공급 기능은 위험이 낮은 대기업이나 전통산업 분야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자금의 수요와 공급간의 불일치가 확대돼 사상 최저 수준으로 금리가 하락하고 400조원이 넘는 부동자금이 투자처를 찾지 못해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경제에 엄청난 비효율과 기회비용을 부담하게 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지속적이고 균형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고위험ㆍ고수익 분야, 소위 혁신산업에 대한 자금공급도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직접금융시장에서 자금의 중개역할이 강화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적 개념의 자본시장에서 전통적인 주식이나 채권의 발행만으로는 자금중개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최첨단의 증권설계능력과 이와 연관된 리스크를 관리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부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투자은행의 기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장외파생상품 업무 인가 기준의 완화, 신용파생상품과 파생결합증권의 취급 허용 등이 이러한 취지로 포함된 조치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 증권업계가 투자은행으로 성장할 역량을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특히 대규모의 자본거래와 다양한 리스크에 연관되는 투자은행 업무의 특성을 감안할 때 가장 근원적인 과제는 대형화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최대 증권사의 총자산 규모는 미국의 대표적 투자은행의 100분의1에도 미치지 못한다.
투자은행 업무능력의 강화도 시급한 과제이다. 금융공학, 인수합병(M&A) 및 기업구조조정, 리스크 관리 등의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규제완화가 오히려 외국 경쟁자들의 진입장벽만 제거해주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이번 규제완화가 제시한 또 하나의 중요한 화두는 자산관리(Wealth Management) 분야의 육성이다. 노령화 사회로의 급속한 진전과 연기금관리기본법 개정, 퇴직연금제 도입 등의 제도적 변화가 자산관리 수요의 획기적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아직은 자산관리업무가 은행에 편중돼 있지만, 증권사가 자산관리 분야에서 앞서가고 있는 외국의 사례를 볼 때 우리나라도 향후 창출될 신규 수요에 대해서는 증권업계가 비교우위를 가질 여지가 충분하다. 자산운용 역량을 더욱 제고하고 종합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춤으로써 선의의 자산관리자로서 투자자의 신뢰를 확보해나가기 위한 전략과 실천이 필요하다.
이번 조치는 그 내용 이상으로 증권산업 육성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확고하게 표명했다는 시그널링 효과로서의 의미도 크다고 하겠다. 이제는 우리 증권업계가 더욱 치열하게 변신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