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다시 해외로] 환란상처 딛고 `확장경영` 활기

`이제는 다시 해외시장이다`. 은행권은 물론 보험, 증권, 캐피탈 등 국내 금융회사들이 다시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대부분의 은행들은 외환위기 이후 부실정리와 비용절감 등 경영합리화를 위해 대거 폐쇄했던 해외지점이나 사무소를 다시 개설하기 시작했으며 기존 해외점포 역시 철저한 `토착화` 전략을 통해 영업확장을 꾀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강도 높게 추진해 온 구조조정 작업이 점차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면서 신용도가 회복되자 치열한 경쟁 속에 포화상태에 이른 국내시장 대신 해외시장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찾겠다는 전략으로 선회한 것이다. 하지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외환위기를 간신히 극복한 현 시점에서 금융회사들이 일제히 해외점포 수를 늘리는 등 확장경영에 나서는 데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세계 유수의 금융사들과 겨룰 만한 경쟁력을 충분히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해외진출 경쟁을 펼칠 경우 외환위기 당시 맛봤던 뼈저린 실패를 되풀이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정신 재무장과 선진금융기법 습득 등을 통해 경쟁력을 한층 강화했다고 자신하고 있는 국내 금융회사들이 국제금융 시장에서 어떤 결과를 얻어낼 지 주목된다. ◇`구조조정`에서 `확장경영`으로= 은행권은 외환위기가 닥쳐온 지난 97년 말에만 해도 무려 257개의 해외점포를 운영했으나 이후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온 부실자산에 휘말려 주요 거점에 있는 지점이나 사무소를 대거 폐쇄하는 아픔을 맛봐야 했다. 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 동안 절반이 넘는 148개(57.6%)의 점포가 문을 닫았고 이후에도 크고 작은 해외점포 구조조정이 끊이질 않았다. 살아 남은 점포들 역시 부실자산을 대거 국내 본점으로 이관하면서 몸집이 줄어든 채 `눈치 밥`을 먹는 곳이 상당수에 달했다. 이처럼 부실정리와 수익중심 경영으로 급선회 했던 은행권이 지난해를 전후해 구조조정의 성과가 어느 정도 나타나고 남아 있는 해외점포의 실적도 다시 회복세로 접어들자 하나 둘씩 다시 해외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국제적인 신용평가회사들이 신용도를 다시 높이면서 국제금융시장에서 할 수 있는 영업의 제약이 많이 사라진 데다 국가간 장벽이 무너지는 글로벌화 추세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국제적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당위성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국내 시장이 소매금융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면서 국내시장에 집중된 `위험`의 분산과 새로운 수익원의 발굴이 절실해 진 것도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된 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신흥시장`을 개척하라= 현재 대부분의 국내은행들이 가장 주력하고 있는 해외시장은 단연 중국이다. 이미 국제 금융시장의 한 축으로 부상한 상하이는 물론 베이징과 칭다오, 다롄 등 주요 거점에 새로 지점 또는 사무소를 개설했거나 조만간 진출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보험사들 역시 삼성화재가 이미 지난 2000년에 상하이 지점을 연데 이어 LG화재와 현대해상도 베이징과 상하이에 사무소를 열고 지점설립을 준비하는 등 중국시장 진출에 주력하고 있다. 은행과 보험사들은 또한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과 동유럽, 러시아 등 신흥지역을 대상으로 교두보 마련에 나서는 등 진출지역도 갈수록 다양화 하는 추세다. 우리은행의 한 관계자는 “과거와는 달리 대부분의 은행들이 기존의 선진 금융중심지 위주의 진출방식에서 벗어나 현지은행에 대한 경쟁우위와 적정 수익성 확보가 가능한 곳을 해외거점의 우선순위로 검토하고 있다”며 “시장의 진입장벽이 높은 선진국과는 달리 신흥시장에서는 국내 은행의 신인도가 훨씬 높아 자금조달 비용 등의 측면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여신심사를 비롯한 금융시스템이 `혁신`에 가까울 정도로 달라져 과거에 비해 부실우려도 상대적으로 적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 선진국 시장의 경우 교포 등 한인사회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집중하거나 국내 본점의 국제금융영업 활성화를 위한 거래중개와 정보수집에 주력하는 등 전략을 바꿔나가고 있다. ◇“외환위기 교훈 잊지 말아야”= “현지은행보다 경쟁우위가 있으며 현지화가 가능한 지역을 위주로 해외거점 개발을 추진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지만 자칫 잘못하면 또다시 해외점포의 금융부실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감도 적지 않습니다”. 이덕훈 우리은행장은 지난 5월 시카고와 오사카 등 해외시장을 둘러본 뒤 느낀 소감을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이렇게 전했다. “외환위기 당시의 아픔을 도약의 기회로 삼자”는 취지의 발언이지만 경쟁적으로 해외진출에 나서고 있는 국내 금융회사들이 한번쯤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이처럼 금융권 일각에서는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한 경쟁적 해외진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해외점포의 영업이 여신이나 외환거래 등 단순업무로 국한되고 그나마 현지진출 국내 기업이 주요고객이라는 점에서 한꺼번에 나갈 경우 출혈경쟁이 불가피 하다는 것이다. 한 국책은행의 임원은 “은행들이 지난해 사상 최대의 순이익을 기록하면서 재무건전성이나 수익성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세계 주요은행들과 견줄 만큼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올들어 SK글로벌 사태나 북한 핵 문제 등으로 경영이 한꺼번에 휘청거렸던 사례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언제 또 발생할 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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