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무대 오르는 김인희 서울발레시어터 단장

"20년전 SBT 창단 작품으로 끝맺을 수 있어 감사할 뿐이죠"

김연희 서울발레시어터 단장5

"무대에서 몸짓으로 작별 인사를 건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죠."

은퇴공연을 준비하는 소감에선 아쉬움보다 행복함이 넘쳤다. 중학교 1학년, 늦깎이 발레 학도로 토슈즈를 신은 뒤 유니버설·국립 발레단 무용수를 거치며 '1세대 발레리나'로 이름을 날렸다. 1995년엔 국내 최초 민간 무용 단체 '서울발레시어터'(SBT)를 창단, 20년째 단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렇게 '춤과 하나 되어' 살아온 40년. 김인희(52·사진) SBT 단장은 10년 만에 단장 아닌 발레리나 타이틀을 달고 무대에 오른다. 무용수로서의 마지막 공연이다.

지난 19일 과천시민회관 내 SBT 연습실에서 만난 김 단장은 SBT 창단 20주년 기념 공연에서 펼칠 '뜨거운 안녕'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가 선보일 작품은 SBT의 창단작 빙(Being). 남편이자 SBT 상임 안무가인 제임스 전의 작품이다. "초연 때는 수월하게 했던 동작들이 지금은 확실히 다르게 다가오죠. 몸이 마음을 따라와 주지 않는다는 느낌이랄까요(웃음). 그래도 SBT의 시작을 알린 공연으로 끝을 맺을 수 있어 감사할 뿐이에요."


무용 인생의 절반을 바친 SBT는 김 단장에게 자식 같은 존재다. "20년 전만 해도 창작발레가 많지 않았어요. 늘 남의 나라에서 만든 공연을 하다 보니 남의 옷을 빌려 입었다 돌려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죠. '우리 것도 만들어 외국에 팔아보자'는 젊은 패기로 시작해 정신없이 달려오다 보니 벌써 성인이 됐네요." 20년간 고정적인 국가 지원 없이 자급자족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다. 1997년 외환위기부터 2000년 예술의전당 입주 무산, 2008년 금융위기… 고난은 늘 찾아왔다. 최근 2년만 해도 세월호·메르스 같은 예상 못 한 일로 타격이 컸다. '이제 정말 그만둘 때인가' 하는 생각도 했을 정도. 속상하고 불안한 마음은 단원들을 보며 다잡았다. 김 단장은 "게으름 한 번 피우지 않는 사람들이 기죽어 춤추거나 직업과 무대를 잃는 모습을 볼 수는 없다"며 "내부의 에너지로 늘 위기를 극복하고 이겨 내겠다"고 웃어 보였다.

함께 걷는 이가 있어 힘든 길이 외롭지는 않았다. 1989년 부부의 연을 맺은 제임스 전은 인간 김인희와 무용인 김인희의 인생을 함께하는 동반자다. "둘 중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이 일을 못 할 거예요. 우리 부부가 자식을 낳지 않은 것도 SBT에 오롯이 쏟아 붓겠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천생연분인 거죠."

'민간 무용단'이라는 개척의 길을 걸어온 지 20년. 모두 '10년을 못 넘길 것'이라던 걱정하던 SBT는 그동안 100여 개의 모던발레를 만들었고, '국내 최초 창작 발레 라이선스 수출'이란 쾌거도 달성했다. '이제 씨앗을 뿌린 것일 뿐'이라는 김 단장은 "나와 제임스 이후에도 SBT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대한민국 발레계와 관객이 나눌 수 있길 기도한다"고 전했다.

"춤을 사랑하고, 열심히 추려고 했던 사람으로 기억해주세요." 무용수 김인희의 바람이 담긴 작별 무대와 SBT 20년을 총정리하는 '스페셜 갈라 & 빙(Being) 더 베스트'는 22~2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송주희기자 ssong@sed.co.kr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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