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투자은행(IB)업계의 고질병인 '덤핑' 경쟁이 초대형 기업공개(IPO) 딜로 주목 받아온 호텔롯데의 상장 주관사 선정에서도 재현된 것으로 확인됐다. 증권사가 실적(트랙 레코드)을 쌓기 위해 '제 살 깎기' 식 옛 관행을 반복하고 있다는 비판과 IB 경쟁력 강화가 구호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거셀 수밖에 없게 됐다. 대형 증권사들이 글로벌 IB로 성장하기 위해 차별화된 전략과 경쟁력 확보는 물론 "말이 아닌 행동을 먼저 이행할 때"라는 쓴소리가 나오고 있다.
5일 IB업계에 따르면 호텔롯데 상장 주관사 선정 입찰에 참여한 국내 6개 증권사가 기본 수수료율로 평균 0.55%를 책정해 제안했다. 국내 증권사들의 덤핑 경쟁이 예견되자 외국계 증권사 8곳도 0.8% 안팎의 수수료율을 제안하는 데 그쳤다.
특히 호텔롯데의 상장주관사로 선정되지는 않았지만 국내 한 대형증권사가 '0.2%'라는 헐값 수수료율을 제시하며 과당 경쟁을 유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호텔롯데 상장주관사 선정 입찰에 참여한 증권사가 제시한 수수료율은 최근 3년 동안 IPO를 추진한 4대 그룹의 5개 계열사(현대로템, 삼성에스디에스, 제일모직, 이노션, SK D&D)의 평균 기본 수수료율(0.92%)에도 한참 못 미쳤다.
인수 수수료는 기업의 상장 주관과 주식 인수 업무를 맡은 증권사의 보수로 기업은 상장을 통해 모집된 자금의 일정 비율을 상장주관사단에 지급하게 된다. 롯데그룹은 외국계를 포함해 7개 증권사로 구성된 상장주관사단이 제시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본 수수료율을 확정할 계획이어서 수수료율은 0.5% 정도에 머물 가능성이 커 보인다. 6조원가량인 호텔롯데의 공모 규모를 감안하면 전체 수수료 수입은 300억원 수준에 이를 7개 상장주관사가 나눠 갖게 되면 일부 업체는 인건비를 건지기도 쉽지 않게 된다.
증권사의 수수료 덤핑은 업계가 지속적으로 자정을 선언하지만 없어지긴커녕 눈치 작전만 심화되는 형국이다. 상반기에도 2,064억원을 모집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엔에스홈쇼핑의 인수 수수료율이 0.5%에 불과했다. 정부 산하 공기업인 그랜드코리아레저(GK)가 지난 2009년 상장할 당시 대표주관사인 미래에셋증권은 유례를 찾을 수 없는 0.01%의 수수료율을 제안해 업계가 개선을 모색했지만 공염불에 그쳐온 것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공모액이 1,000억원 넘는 IPO 거래의 평균 인수 수수료율은 1%로 집계됐다. 이는 대형 IPO 거래의 수수료율이 5%를 넘는 미국·일본 등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기업 인수 수수료율이 2000년대 초반 이후 하락세를 보이면서 1% 이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IB 확대를 외치는 대형 증권사들도 비슷한 틀 속에서 붕어빵 찍기 경쟁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증권사가 IPO 준비 기업에 대해 리서치센터 등의 역량을 합쳐 관련 산업과 기업에 대한 심도 있는 자문 서비스를 하는 차별화된 실력을 갖춰야 한다"며 "무엇보다 헐값으로 진흙탕 경쟁을 하려는 구태를 벗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류시명 미래에셋증권 기업금융본부 팀장은 "실적을 쌓기 위해 증권사가 관행에 따른 안정적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는 만큼 선도적 전략을 내놓을 수 있게 보다 많은 자율성이 시장에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민구기자 mingu@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