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이민 줄어 씨 마른 일손… 미국 농가 애탄다

농촌 풀타임 근로자수 20% 감소 평균연령도 38세로


미국 와이오밍주의 농장주인 사만다 본드씨는 지난해 일손 부족으로 재배한 딸기 25%를 제때 수확하지 못한 채 밭에 썩히고 말았다. 올해도 그는 임금을 20% 올려주겠다는 전단지를 고속도로변·교회 등 곳곳에 붙였지만 필요한 인력 100명 가운데 60명만 구할 수 있었다.

미국 농촌이 고령화와 멕시코 불법 이민자 감소 등의 여파로 인력 부족 현상에 아우성을 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등 공화당의 유력 대선주자들이 '이민자 때리기' 경쟁을 벌이면서 위기감은 더 커지고 있다.

◇멕시코계 불법 노동자로 굴러가는 미 농업=초당파 그룹인 '새로운 미국 경제를 위한 파트너십'에 따르면 지난해 농촌 풀타임 근로자 수는 지난 2000년보다 14만6,000명, 20%나 감소했다. 근로자 평균 연령도 33세에서 38세로 올라갔다. 한국처럼 미국인 젊은이들도 힘들고 더러운 농장 일을 외면하고 대부분 도시로 떠났기 때문이다.

부족한 인력은 멕시코계 불법 체류자들이 메우고 있다. 전미농업노동자협회의 프랭크 가스페리니 부회장은 "2013년 이후 농촌은 지역별로 20~50%가량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정부는 150만명의 계절 근로자 가운데 절반이 불법 체류자라고 추정하지만 실제로는 75~80%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일손 확보에 비상이 걸린 농장주들은 임금 인상 등 각종 '당근'을 제시하고 있다. 농촌 근로자들의 임금은 올 1·4분기 현재 평균 시간당 11.33달러로 2010년 이후 5.3%(물가상승률 감안) 상승했다. 이는 소매판매 등 미숙련 근로자들의 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은 것과 대비된다. 인력 부족이 심각한 캘리포니아·애리조나의 일부 지역은 최고 17달러까지 주고 있다. 또 영어 교육 프로그램과 커뮤니티 대학 수강 지원, 인력 소개비와 퇴직금 인상, 가족 병원비 지급 등의 대책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불법 노동자 채용마저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주당 근로 시간이 50~70시간에 달하지만 일 년에 6~8개월만 일하는 임시직이라 연간 수입이 2만달러도 안 되는 탓이다. 또 경기 호조로 일자리 구하기가 쉬워지자 멕시코 근로자들도 도시로 몰리고 있다.

특히 미 정부가 멕시코 국경의 단속을 강화하면서 불법 이민자 수 자체가 줄고 있는 실정이다. 미 정부도 지난해 9월 계절 노동자에 대한 임시 고용 비자 수를 3년 전보다 50%가량 확대했지만 농장주들은 관련 비용이 너무 비싸고 숫자도 적다고 아우성이다.

◇공화당에 뿔난 농민들=미국은 세계 최대 농산물 수출국 가운데 하나지만 의외로 대기업 비중은 적은 편이다. 100만달러 이상 매출 농장 가운데 85%는 가족 소유이며 이들은 미 생산량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또 3억1,800만 인구 가운데 농민들은 210만명으로 전체의 0.66%에 불과하다. 농장주의 평균 나이는 60세 이상에 이른다. 농촌 고령화 등 가뜩이나 취약한 인력 구조에다 외국인 인력마저 유입되지 않을 경우 문 닫는 농장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더구나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해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등 공화당 대선 후보들의 불법 이민자 추방을 공약하면서 시름은 더 깊어지고 있다. 미 정치 전문지인 폴리티코는 "보수적 성향인 농촌 지역에서 '농장을 폐쇄하라는 말이냐' '역겹고 끔찍한 짓'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농민단체의 공화당 압박도 본격화하고 있다. 전미농장연합은 "의회가 이민지 추방과 국경 경비를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 과일 생산과 농장의 순소득이 각각 61%, 30%나 급감하고 식료품 가격은 6% 오를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미 노동력 부족으로 농산물 생산이 연간 31억달러 감소했고 트럭 운송·마케팅·장비 제조 등 관련 산업도 28억달러의 매출 손실이 발생했다는 게 농민단체들의 주장이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co.kr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