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YS)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새삼 그가 남긴 업적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금융실명제 도입과 지방자치제 부활,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 등 굵직굵직한 정책 성과도 적지 않지만 민주투사였던 YS가 권위주의 산업화 세력에 합류, 한국 보수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는 점도 분명하다.
지난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YS는 1988년 총선에서 제3당으로 밀리며 위기를 맞게 된다. 이때 YS는 일생일대의 승부수를 던진다.
노태우 대통령이 총재로 있던 민정당,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이끌던 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선언하고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한 것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남긴 YS는 결국 1992년 14대 대선에서 대권을 거머쥐었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YS의 선택이 당시에는 정치 야합의 측면이 일부 있었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산업화·민주화 세력의 '화학적 결합'을 통해 보수 정치권의 주류를 일신하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등 보수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YS와 상도동계 등 민주화 세력이 결합함으로써 한국 보수의 지평을 확대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YS 정권 초기 언론사 기자로 지근거리에서 김 전 대통령을 취재했던 신성범 새누리당 의원은 "DJ가 '음(陰)의 정치인'이라면 힘차고 저돌적인 성격의 YS는 '양(陽)의 정치인'"이라며 "이런 기운을 바탕으로 엄청난 승부수도 던지고 한국 보수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업적도 남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서거 이후 그가 물려준 유산에 대한 평가도 여야를 막론하고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은 24일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공(功)은 일방적으로 폄훼되고 과(過)는 부풀려진다면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며 "근대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결합체로서 개혁보수 정당의 가치를 지향하는 새누리당으로서는 이런 큰 업적을 달성한 박정희·김영삼 두 지도자의 뜻을 새겨 계승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YS에 대한 재평가 작업은 야권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금융실명제는 오늘날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로, 역사 바로 세우기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로 각각 이어지고 있다"며 "하나회 해체는 친박(친박근혜)으로 이어지는 특권·특혜 집단의 해체를 요구하고 있으며 YH 여성노동자들을 헌신적으로 지원했던 자세는 민중의 생존권 수호로 이어지고 있다"고 추켜올렸다.
물론 민주화·산업화 세력의 결합이 남긴 과제도 만만치 않다.
우선 3당 합당은 '호남 포위 전략'으로 기능하면서 지역주의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은 "한 지역을 한 정당이 독점하면서 불신과 적대 정치가 일상화됐다"며 "이 같은 지역패권주의는 여전히 우리 정치권을 병들게 만드는 요소"라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급속한 세계화와 시장 개방이 외환위기를 초래했다는 점도 YS가 드리운 그림자로 지목된다. /나윤석·박형윤기자 nagija@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