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철강, 조선업 전철 밟나] 중국 저가공세에 몸살… "석화·철강 중소기업→대기업 차례로 붕괴" 경고

석유화학 영업이익률 4년새 4분의1로


세계 1위 조선업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3년. 2010년까지만 해도 조선업은 대한민국의 간판 업종이었다. 한국은행의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2010년 조선업의 영업이익률은 9%에 달했다. 이자보상비율도 536.2%로 건실했고 차입금을 통해 경영을 이어가는 의존도도 22.7%에 불과했다. 3년 뒤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2013년 조선업의 영업이익률은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이자보상비율도 -35.1%를 기록했다. 차입금의존도는 3년 전보다 10%가 넘게 상승한 34.2%에 달했다.

원인은 역시 중국발 과잉공급이었다. 가격경쟁력으로 밀고 들어오는 중국 조선업체에 밀린 나머지 준비도 없이 해양플랜트 분야에 뛰어든 게 화근이었다. 기술력 없이 뛰어든 탓에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이를 감당할 여력이 사라지자 '성공신화'에서 '한계업종'으로 주저앉았다.


석유·화학과 철강도 조선업처럼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지표만 봐도 조선업을 데자뷔하는 듯하다. 석유·화학은 3년 새 이자보상비율이 세 토막이 났다. 조선업과 마찬가지로 유화업종의 경영이 어려워진 가장 큰 원인은 과잉공급으로 인해 수익이 급감한 탓이다. 기초화학물질 제조업의 영업이익률은 2010년 10.9%에서 지난해 2.4%로 급감했다. 경영이 어려워진 탓에 2010년 21%이던 차입금 의존도는 지난해 30%를 넘어섰다.

철강업종도 중국산 저가공세에 몸살을 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1차 철강 제조업(2014년 기준 매출액 103조원)의 경우 지난 2010·2011년 20%를 넘어섰던 매출액 증가율이 2012년(-6.03%) 들어 마이너스 반전한 뒤 3년 연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이자보상비율도 전체 제조업 평균(412.2%)을 밑도는 390.4%를 기록했다. 차입금의존도는 28.2%로 전체 평균(25.3%)을 웃돈다.

최근 들어 유화와 철강 쪽에서 기업 간에 사업 분야를 주고받는 이른바 '빅딜(Big Deal)'이 연달아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입연구원은 "대기업이야 유보금 들고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대기업 전속계약에 묶여 있는 상황"이라며 "IMF 때는 위에서 무너졌지만 철강과 유화는 이대로 가면 위가 아니라 아래서부터 무너진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 같은 기업의 자율적 구조조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현재 새누리당 의원이 7월 대표 발의한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이 국정교과서 논란에 밀려 여전히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는 점이다. 실무를 담당했던 정부 부처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특유의 '재벌 특혜' 프레임을 넘기 위해 원샷법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일본과 달리 전 산업이 아닌 공급과잉 업종에만 범위를 국한했지만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계에 직면한 대표 업종이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는 원샷법 등 기업이 스스로 제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전 세계적인 수요위축과 중국산 저가제품으로 인한 과잉공급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차별화된 제품 경쟁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며 "자율적 구조개편 체계를 만들고 기업이 연구개발(R&D) 투자에 적극 나서 이를 갖출 수 있도록 정책이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항구 선임연구위원도 "사양산업은 없고 사양기업만 있다는 말이 있다. 의류시장 안 좋다지만 일본에서는 유니클로, 유럽에서는 자라·H&M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김상훈기자 세종=구경우기자 ksh25t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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