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버 샷 20야드 늘려준대도 퍼트랑은 못 바꾸죠"

■ 서울경제·문영퀸즈파크 레이디스 클래식 우승 '퍼트 귀신' 김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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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윤의 스텝스윙은 양발을 모으고 서는 어드레스부터 일반 스윙과 다르다. 백스윙을 시작하면서 뒤쪽(오른쪽) 발을 타깃 반대쪽으로 옮겨 디뎠다가 백스윙 톱 단계에 이를 무렵 이번에는 왼발을 타깃 방향으로 내딛으며 다운스윙으로 전환한다. /사진제공=혼마골프


"꼭 넣어야 하는 1~2m 퍼트 때는 정말 수명이 줄어드는 느낌이에요. 그렇지만 다시 태어나도 골프를 할 것 같아요."

김혜윤(26·비씨카드)은 자타공인 '쇼트게임 달인'이다. 어프로치는 클럽이 아닌 손으로 던지듯 정교하고 퍼트는 기계처럼 흔들림이 없다. 지난 1일 경남 거제의 드비치GC에서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서울경제·문영퀸즈파크 레이디스 클래식 최종 3라운드에서 김혜윤의 퍼트 수는 단 23개였다. 퍼터가 필요없는 홀도 많았다. 첫 4개 홀에서 3타를 줄였는데 모두 그린 밖에서 웨지로 한 번에 넣은 칩인 버디였다. 그런 그도 짧은 퍼트에 스트레스가 극심하다고 털어놓았다.

우승 다음날인 2일 만난 김혜윤은 우승의 감격이 채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다. 서울경제 클래식에서 2라운드까지 선두에 5타 뒤졌던 김혜윤은 마지막 날 버디만 8개를 몰아치고 2타 차 우승을 완성했다. 4년 만의 우승이자 통산 5승. 용품 후원사의 고객 대상 행사가 잡혀 있던 터라 김혜윤은 우승 다음날 또 필드에 섰다. "휴대폰을 봤더니 아직 못 읽은 축하 메시지만 300개가 넘더라"며 행복해한 그는 이날도 축하인사를 받느라 미소를 풀 겨를이 없었다.


김혜윤은 "이번이 골프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우승"이라고 했다. 2012시즌까지 세 시즌 연속 1승씩을 올렸던 그는 긴 가뭄을 끝내는 데뷔 첫 역전승을 달성했다. 김혜윤은 "그동안 제주에서 두 번, 중국에서 두 번 우승했는데 이번에는 거제에서 해냈다. 바다가 보여야 잘 치는 스타일인가보다"며 활짝 웃었다. 거의 모든 홀에서 바다가 보이는 드비치GC에서 김혜윤은 우승할 수밖에 없는 기적의 라운드를 펼쳤다. 어프로치 샷뿐 아니라 마지막 18번홀(파5)에서는 유틸리티 클럽으로 친 세 번째 샷이 들어갈 뻔했다. '이글성' 버디. 우승을 사실상 결정짓는 한 방이었다. 김혜윤은 "제 골프백에 아이언은 6번부터 5개뿐이다. 좀 더 긴 거리는 28·25도 유틸리티를 쓴다"며 "워낙 자주 잡고 좋아하는 25도 클럽으로 자신 있게 쳤다. 그런 상황에서 평소 같으면 어드레스 때 시간도 오래 끌고 굉장히 긴장했을 텐데 그때에는 왠지 자신 있었다"고 돌아봤다.

김혜윤의 우승은 KLPGA 투어 전체로 봐도 의미가 크다. 올 시즌 1980년대생의 우승은 김보경(29·요진건설), 이정은(27·교촌F&B)에 이어 김혜윤(1989년생)이 세 번째다. 요즘 KLPGA 투어는 세대교체 속도가 워낙 빨라 20대 중후반 선수들은 '노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팬클럽 회원들 사이에서 김혜윤은 '대장님'으로 통한다. 김혜윤은 "전인지 등 쟁쟁한 후배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단 한 번이라도 우승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는데 이렇게 이뤄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다. "20대 중후반이 돼서 그런지 대회 마지막 날은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요. 여름에 성적이 안 좋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고요. 근데 이번 대회는 이상하게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김혜윤은 "서울경제 클래식 3라운드에서 진짜 평생에 한 번 할 수 있을까 말까 한 플레이를 했다"며 "계속 그렇게 치기는 어렵겠지만 샷에 대한 확신이 생겼기 때문에 내년에도 자신 있다. 올 시즌 점수로도 100점을 주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김혜윤은 잘 알려졌듯 발을 구르는 듯한 동작의 독특한 드라이버 샷으로 유명하다. 거리를 늘리려 고교 1학년 때부터 시작한 '스텝스윙'이다. 연습장에서 일반적인 동작으로도 쳐보는데 스텝스윙보다 15m는 덜 나간다고 한다. 김혜윤은 "선수들 중에서 저보다 더 독특한 동작은 보지 못했다"며 "아마추어분들께는 연습 때만 활용하기를 권한다"고 했다.

국내 투어에 만족하고 있어 해외진출에는 관심을 가진 적 없다는 김혜윤은 "시드(한 시즌 출전권)가 유지되는 한 언제까지고 계속 선수생활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2~3년 전만 해도 30대가 되기 전에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바뀌더라고요. 막상 채를 놓으려니 인생이 허무해질 것 같고…. 어릴 때로 다시 돌아가도 골프를 택할 것 같아요." 김혜윤은 데뷔 후 사흘 이상 골프채를 잡지 않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올 시즌을 앞두고 떠났던 열흘여의 유럽여행 전까지는 그랬다. 그때 처음으로 골프백을 놔두고 해외에 나간 것이었는데 여행을 통해 골프에 대한 열정이 더 커졌다고 한다. 4년 만의 우승이 터진 진짜 이유인 듯도 했다.

김혜윤은 귀신같은 퍼트에 비해 드라이버 샷 거리(237야드)는 상대적으로 다소 아쉽다. 그런 그에게 물었다. 드라이버 샷 20야드를 늘려주는 대가로 퍼트 성공률 10%를 뺏어간다면? 김혜윤은 손사래를 쳤다. "절대 안 되죠. 드라이버 샷은 조금 짧아도 다른 걸로 보완되지만 퍼트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리고 저 그렇게 거리가 달리는 선수는 아닙니다. 아시죠?" /양준호기자 miguel@sed.co.kr

■ 김혜윤은

△1989년 11월15일 △키 163cm △2007년 프로입문 △통산 5승 △혼마 TW727 드라이버(로프트 9.5도), 혼마 TW717 3·5번 우드, 혼마 TW727 V 아이언 #6~#10(피칭웨지), 스릭슨 Z-STAR XV 골프볼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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