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중국을 비롯한 철강산업의 전 세계적인 공급과잉 문제를 ‘절름발이 시장’이라고 규정하면서 “우리나라에 용광로가 더 만들어지면 안되며 포스코도 더 이상 고로를 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포스코가 확고한 의지를 가진 만큼 국내의 다른 철강사들이 고로를 새로 짓는 것도 곤란하다는 것이다. 권 회장은 또 최근 워크아웃에 들어가 매물로 나온 동부제철에 대해 “생각도 안하고 있다”고 말해 인수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권 회장은 지난 4일 인천 송도 동북아무역센터에서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단독인터뷰에서 국내외 철강산업에 대한 생각을 가감 없이 밝혔다. 지난해 3월 취임 이후 국내 언론과 따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권회장은 우선 지난해 12월 준공한 포항 파이넥스 3공장에 대해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짓는 용광로”라고 강조했다. 그는 “1인당 철강 생산량이 미국은 400㎏, 일본도 많아야 700~800㎏ 정도인데 한국은 1.1톤으로 우리 같은 나라는 없다”며 “철강 제조설비를 더 확대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도 용인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철강협회장으로서 포스코는 물론 국내 다른 철강업체들도 공급과잉을 부추겨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권 회장은 세계 철강 공급과잉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중국은 40% 가까이가 오버캐파(공급과잉)”라고 규정하며 “무조건적 투자가 지금의 공급과잉을 낳았다. 중국 역시 후회를 많이 하고 다시 줄이려 하지만 뜻대로 잘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유가 하락으로 러시아 경제가 무너지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철강재까지 싼값에 널리 유통돼 훨훨 타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고 권 회장은 설명했다. 권 회장은 “(공급과잉이 해결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는 만큼 각오하고 내실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회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4일 인천 송도의 트라이볼에서 열린 아이디어 마켓플레이스 행사에 이은 오찬 직후 이뤄졌다. 권 회장은 기자와 만나 국내외 철강시장의 어려움과 해법에 대한 얘기를 풀어놨다. 권 회장은 평소 많은 고민을 안고 있었던지 대화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며 여러 화제로 번져갔다. 취임 이후 내우외환의 상황 타개에 집중하느라 언론과의 인터뷰는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권 회장은 이날만큼은 철강 시장이 악화한 이유와 왜 이 상황을 타개하기 어려운지를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권 회장은 우선 세계 철강공급 과잉의 원인으로 중국을 지목했다. 중국의 조강 생산량은 2005년 3억5,000만톤에서 2014년 8억2,000만톤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전 세계 조강생산량이 5억3,000만톤 늘었는데 이 가운데 90%가 중국 몫이다. 그러나 경기 둔화로 철강 수요가 줄어들면서 중국의 남는 철강재가 아시아는 물론 세계 전역으로 퍼지며 공급 과잉을 일으켰다. 권 회장은 “(해법은)지금 가장 큰 문제인 중국의 과잉설비를 줄이는 것”이라며 “중국의 철강 생산능력이 11억톤가량인데 이 중 40% 정도인 4억톤 이상이 오버캐파(과잉생산설비)”라면서 “중국이 설비를 30%만 줄여주면 공급과잉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 같은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철강업 구조조정이 지방경제와 고용문제 등이 얽히며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중국은 철강회사가 각지역(성)마다 흩어져 있고 각 회사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돼 특정 철강회사의 문을 닫으면 도시의 경쟁력이 마비돼요. 그리되면 도시가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중앙집권적 요소가 강한 중국정부지만 이런 점 때문에 안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중국 중앙정부가 지방에 철강 설비 폐쇄를 말해도 지방이 따르기 어려운 구조를 권 회장은 누누이 강조했다.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 구조라고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설명했다.
권 회장은 “최근 중국 정부가 환경 규제를 강화해 기준에 맞지 않는 설비를 없애는 전략을 쓰고 있지만 눈에 띄는 구조조정 효과를 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권 회장은 해법이 없는 중국의 철강 공급과잉 문제를 설명하다 답답함을 느꼈는지 “누구라도, 시진핑(중국국가주석)도 풀 수 없는 문제”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여기에 권 회장의 고민을 더 키운 것이 유가하락이다. 유가 하락은 기름을 팔아 경제를 유지하던 러시아에 직격탄이 됐고 루블화가 폭락했다.
“가뜩이나 중국 때문에 슬래브(철강 반제품)가 과잉생산돼 시장에 나와 값이 떨어지는데 셰일가스로 기름값이 확 떨어져 러시아경제를 흔들어놓고 있어요. 슬래브가 러시아 이런 곳에서 많이 나오는데 자기네 시장은 안 크니 슬래브를 밖으로 내놓을 수밖에요. 과거 100원에 팔던 게 밖으로 나오면 50원, 생산 원가도 안돼 시장에 유통되고 있으니…. 그쪽 나라들은 (채산성이) 맞을지 몰라도 우리는 안돼요.”
권 회장은 그러면서 세계 철강시장의 불균형 상황에 대해 더욱 톤을 높여 얘기했다.
“철강재 범람으로 시장이 완전히 절름발이가 됐습니다. 시장이 회복되기까지 제대로 각오를 해야 합니다. 정말 내실을 다지는 식으로 위기를 벗어나야 해요.”
권회장은 국내 철강업계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뜻도 내비쳤다. 그는 “철강산업 하나만 생각하면 일부 회사는 정리하고 설비를 파는 것이 맞다”면서도 “하지만 일자리가 사라지는 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철강산업 구조조정이나 재편이 정부나 산업계 전체가 논할 것이라면 개별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은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원가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권 회장은 이 대목에서 포스코가 직접 개발해 상용화하고 세계 각국에 기술수출을 진행 중인 ‘파이넥스’ 공법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애정을 숨김없이 표현했다. 포스코는 1992년부터 연구를 거듭한 끝에 2007년 파이넥스 상용화에 성공했다. 파이넥스는 철가루를 뭉치는 중간 과정을 생략해 투자비와 생산원가를 낮춘다.
“파이넥스는 500년 동안 이어 온 용광로법을 대체하는 우리 고유의 기술입니다.”
그는 파이넥스의 친환경성과 효율성 외에도 원재료 조달의 우수성을 상세히 소개했다. 그는 “포스코는 철광석을 대부분 브라질과 호주에서 들여오는데 파이넥스는 질이 떨어지는 철가루로도 쇳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이나 중국 어디서든지 원료를 조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용광로 가동 시 원료탄으로 쓰는고 점결성 유연탄 생산량이 점차 줄어들어 언젠가 없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이를 필요로 하지않는 파이넥스는 미래에 반드시 필요한 공법이라는 게 권 회장의 설명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에도 파이넥스가 꼭 들어맞는다는 게 권 회장의 신념이다. 그는 실제 지난해 12월 파이넥스 3공장 준공식에 참여한 박 대통령에게 설비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힘썼다. “파이넥스가 가지는 의미를 고려해 중량급 인사가 준공식에 참여하기를 바랐는데 마침 대통령이 자리했어요. 대통령께 ‘창조경제는 정보통신기술(ICT)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파이넥스)도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더니 대통령도 고개를 끄덕끄덕하시더군요.”
권 회장은 “파이넥스 설계에 수백 명, 제조에 수천 명이 투입돼 그만큼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으니 진정한 창조경제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권 회장은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포스코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포항과 광양에서 민간 자율형 창조경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또 2012년부터 벤처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경영컨설팅과 상품화를 돕는 아이디어 마켓플레이스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인천=임진혁기자 liberal@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