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응답하라 2007

보험산업 8년새 덩치 커졌지만 각종 규제에 발목잡혀 체질 허약
내년 시행 '경쟁력 강화 로드맵' 철저히 대비해야 생존할 수 있어



시간은 흐른다. 그래서 시간은 기어코 이별을 만들고 그리해 시간은 반드시 후회를 만든다.

사랑한다면 지금 말해야 한다. 숨 가쁘게만 살아가는 이 순간들이 아쉬움으로 변하기 전에 말해야 한다. 어쩌면 시간이 남기는 가장 큰 선물은 사랑했던 기억일지도 모른다.

즐겨보고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 7회 '사랑하는 그대에게' 편은 이런 내레이션과 함께 끝을 맺는다. 사랑하는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솔직하게 전하며 긴 여운을 남겼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 많은 세대가 빠져드는 것은 우리 삶의 모습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그 시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성공하는 드라마의 필수 요소라는 처절한 복수와 탐욕스러운 계산, 비밀스러운 가정사 하나 없이 향수에 젖게 하는 장면과 감칠맛 나는 대사, 꾸밈없는 이야기로 시청자를 울리고 또 웃긴다.

게다가 나는 1988의 그 친구들과 비슷한 또래로 가스 냄새를 맡아가며 연탄불을 갈고 독서실 바닥에 이불을 펴놓고 잠을 잤으며, 목만 덮이는 폴라티를 애용했던 시절을 보냈기에 감동이 더하다.

비록 촌스러웠을지라도 행복했던 시절을 바라보는 그 따뜻한 시선으로 보험업계, 그것도 아주 중요한 사건이 있었던 2007년을 바라보자.


그해 4월 금융감독위원회가 생명보험사의 상장을 위한 유가증권시장 상장 규정 개정안을 승인했다. 찬성과 반대 주장이 팽팽히 맞섰던 무려 18년 동안의 논란이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보험업계는 환호했다. 생명보험사 관계자들은 "(생보사 상장이) 보험산업이 대외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고 자본 확충과 경영환경에 대한 불확실성도 해소될 것"이라며 한껏 들떴다.

보험업계에 이어 금융당국을 담당하며 지루했던 줄다리기를 지켜봤던 나는 생보사 상장이 업계의 주장대로 성장의 계기가 되기를 응원했다. 그렇게 되면 금융산업의 변방에만 머물렀던 보험이 당당히 중심의 자리에 서게 될 것으로 믿었다. 또 그것이 '유배당 보험'의 계약자로 생보사 상장에 '큰 공'을 세운, 고객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10년의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보험산업은 기대한 만큼 성장하지 못한 듯하다.

2007년 당시 300조원이었던 생보업계 자산이 올해 700조원으로 외형은 배 이상 커졌지만 내성은 키우지 못했다. 그렇게 원했던 상장을 이룬 생보사는 단 4개에 불과하다. 여전히 안정적인 자본 확충의 길을 찾지 못해 국제회계기준이 강화된다고 할 때마다 불안에 떨고 있다. 본연의 상품인 '보장성 보험'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얼마 늘었다고 강조하는 것은 자랑인지 자조인지 분간이 안 된다.

보험산업의 허약한 체질은 감독당국과 정치권의 책임도 크다. 보험의 핵심인 창의적인 상품 설계와 가격 책정을 온갖 규제로 막아왔다. 자동차보험 등 민감한 상품의 보험료 인상 때는 국회가 나서 호통을 쳤다.

정부가 보험산업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지난 10월 파격적인 수준의 로드맵을 발표했다. 생보사 상장 때만큼의 환호성이 들릴 법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업계는 가이드를 잃은 관광객처럼 당황해 했고 감독당국은 일자리를 잃은 가이드처럼 불만을 보였다.

며칠 후 보험업계는 기대와 우려 속에 새해를 맞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2016년이 앞으로 10년 후에 어떤 응답을 하게 될까. 보험산업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으로 내레이션을 쓴다면 이런 내용이 되지 않을까 싶다.

시장은 변한다. 그래서 시장은 기어코 패자를 만들고 그리해 시장은 반드시 후회를 만든다.

생존하고 싶다면 지금 준비해야 한다. 기회가 될 수 있는 앞으로의 순간들이 아쉬움으로 변하기 전에 준비해야 한다. 늘 그랬듯이 시장이 남기는 가장 큰 선물은 승자만의 몫이다.


/박태준 금융부장 jun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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