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수출, 돌파구는 없나] <1> GDP 갉아먹는 수출

'수출 대표선수' 10년째 그대로…'뉴페이스' 없다는게 더 문제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주도했던 수출이 이제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 3·4분기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을 보면 내수의 성장 기여도는 전 분기보다 1.9%포인트 올랐지만 수출은 0.7%포인트 후퇴했다. 우리나라의 총수출은 올 들어 9개월 연속 감소(-6.6%)하며 경제 성장률을 갉아먹는 중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수출 증가율이 1%포인트 하락하면 성장률은 0.24%포인트 줄어든다. 물론 수출부진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전 세계 교역규모가 쪼그라들고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다른 국가들 역시 수출급감에 따른 몸살을 앓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세계경기가 다시 회복세를 타더라도 우리가 다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선수, 즉 수출주력품목은 10년째 그대로고 뒤를 이을 차세대 수출품은 또렷하지 않다. 낡은 산업군에 대한 구조조정 속도는 더디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하는 산업정책 때문에 미래를 책임져야 할 신성장동력 개발 계획은 누더기가 됐다.




수출부진은 한국에 우호적이던 글로벌 환경이 돌아선 영향이 크다. 올해 세계 교역량이 10.9% 감소하며 전체 수요가 줄어든데다 통화완화 정책으로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가 약세로 돌아서 경쟁국 제품들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졌다. 무엇보다 글로벌 공급과잉이 빚어지며 국제유가가 지난해 절반 수준인 50달러 이하로 떨어져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석유·석유화학제품 수출액이 함께 하락했다.

하지만 수출부진을 외부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은 연간 수출 규모를 5,700만 달러까지 끌어올리며 한국을 무역 1조달러 국가에 올려놓았던 13대 주력 수출품목의 경쟁력도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올 들어 13대 주력품목의 수출 감소폭은 8.1%로 전체 수출(-6.6%)보다 가파르다. 9월까지 13대 수출품목 가운데 9개의 수출이 줄었다. 중국의 추격에 휴대폰 수출은 올 들어 20.2%나 줄었고 가전(-14.4%), 철강(-11.1%), 자동차(-6.2%), 디스플레이(- 4.8%) 등도 줄줄이 하락했다. 이대로라면 세계 경제 성장률이 회복하고 유가가 다시 올라도 한국의 수출 증가율은 매년 10% 성장했던 지난 10년과 같은 영광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더 큰 문제는 주력 수출품목을 대체할 차세대 제품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전체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13대 주력수출품목은 2006년 이후 10년째 그대로다. 최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의 수출이 늘고 있지만 아직 주력수출품인 액정표시장치(LCD)를 대체하기는 이르고 화장품도 아직 주력수출품이 되기에는 수출액이 작다. 엔화·유로화와 약세로 선진국 제품들의 경쟁력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중국은 우리와 기술격차를 1.4년까지 줄이며 턱밑까지 쫓아왔다. 수출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혁신 제품 없으면 기존 시장마저 후발주자들에게 내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신승관 국제무역연구원 무역동향분석실장은 "글로벌 경기회복 이후 우리 수출이 예전처럼 늘지 않을 때 대처하면 늦다"며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은 과감히 구조조정해 세계 시장에서 싸울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산업정책 비전도 우리 수출 경쟁력을 끌어내리는 요인이다. 실제 노무현 정부는 지능형로봇·미래형자동차·디지털TV방송·바이오신약 등을 10대 성장동력으로 집중 육성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로 바뀌자 '저탄소녹색성장'의 이름으로 신성장동력을 22개로 늘렸고 무공해석탄에너지·태양전지·LED조명·그린카 등에 대한 연구개발(R&D) 투자를 집중했다. 이번 정부 들어서는 다시 '13대산업엔진프로젝트'로 미래 먹거리를 정하고 유망산업인 고속수직이착륙무인항공기·탄소소재·자율주행자동차·극한환경용해양플랜트 등의 개발 지원에 나서고 있다.

정권마다 꼽는 미래 먹거리가 바뀌면서 정부 주도로 싹을 틔웠던 반도체 산업같이 뚝심 있는 투자와 연구를 기대하기는 요원해졌다. 국책 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막대한 R&D 투자가 투입되는 산업정책은 정권마다 바뀔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매 정권 공약이 다르고 정권인사가 누군지에 따라서도 정책은 달라져 3~5년 넘게 하나의 기술을 연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세종=구경우기자 bluesquar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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