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통해 세상읽기] 신언불미, 미언불신

선거철 넘쳐나는 화려한 수사… 票心 따라 원칙없이 갈팡질팡


2016년 4월에 20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실시된다. 그간 정치판을 떠났던 사람도 정치판에 몸을 담았던 사람도 서서히 총선을 의식하며 행보를 시작하고 있다. 선거가 가까워지면 이전과 다른 여러 가지 현상이 생겨난다. 그중에 가장 독특한 점은 언어 불안정의 현상이다.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다고 말하고 이전에 결사반대를 하던 일도 어느 사이 찬성하는 일로 뒤바뀌고 뜨겁게 찬성하던 일도 어느 순간에 결사반대하는 일로 바뀌게 된다. 시민은 정치인 한 사람의 일대기를 계속 주목하며 살 수가 없다. 보통 그 사람의 현재를 슬쩍 보고 투표장에서 표를 던진다. 그러니 정치인은 신념과 가치보다는 그때그때 대중에 먹혀들 만한 공약을 내세워서 표를 얻으려고 한다.

이 때문에 언어는 구성원이 서로 지키리라고 믿는 약속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떠벌리는 공연이 되고 있다. 특히 권력자일수록 여러 가지 상황과 변수를 고려하다 보니 더더욱 말을 바꿔야 하는 일이 많다. 그 결과 선거철이 되면 "화장실 들어갈 때와 화장실 나올 때 다르다"는 말처럼 언어가 막춤을 추게 된다.


노자는 약육강식의 춘추전국시대를 살아가며 말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도덕경 제1장에서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면 그 안에 갇혀서 자유를 잃는 점을 밝혔다. 제일 마지막 81장에서도 말에 대한 이야기로 책의 끝을 맺고 있다. "믿음이 가는 말은 번지르르하지 않고, 번지르르한 말은 믿음이 가지 않는다. 착한 사람은 꼬치꼬치 따지지 않고, 꼬치꼬치 따지는 사람은 착하지 않다(신언불미·信言不美, 미언불신·美言不信. 선자불변·善者不辨, 변자불선·辨者不善)."

노자는 믿음을 주는 말이 아름답게 표현되는 것을 결코 반대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다른 이의 환심을 살 만한 말을 하면서 그 말과 같은 행동을 하지 않는 일이 많아졌다. 노자는 이러한 현상을 목격하고 믿음을 주는 말과 아름다운 말을 구분했다. 믿음을 주는 말은 굳이 화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즉 말에서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구성원끼리 믿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진심이 전해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착한 사람과 잘 따지는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착하다고 보면 상대의 말을 꼬치꼬치 잘 따지지 못해 속임을 당하기도 한다. 반면 잘 따지는 사람은 오히려 남의 단점을 잘 찾아내서 공격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언행을 섬세하게 가누지 못한다. 심지어 잘 따지는 사람은 자신의 명백한 잘못마저 온갖 감언이설로 정당화시키려고 한다. 착한 사람이 잘 따지면 제일 좋다. 그럴 수 없다면 노자는 착한 사람이 잘 따지는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내년의 총선만이 아니라 앞으로 수많은 선거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말로 믿음을 주고 잘 따지며 착한 사람을 만나면 아무런 고민이 없을 것이다. 최선이 없다고 차선으로 우리는 미언보다 신언을 말하고 변자보다는 선자를 뽑는 혜안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사람을 상대로 끊임없이 말하면서 서로 믿지 못하는 '거짓말의 왕국'에 살아가게 될 것이다.


신정 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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