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천재와 범재


1960년대 중반 어린 천재(天才) 때문에 대한민국이 들썩였다. 신동의 이력은 이렇다. 이름은 김웅용, 네 살 때 IQ 테스트에서 210을 받아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고 다섯 살에는 4개 국어를 구사했다. 여섯 살 때는 일본 방송에서 미적분방정식을 풀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천재적 자질을 지녔다고 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이후 행적은 사실 여부가 분명하지 않다.


본인 주장에 따르면 천재다운 행보가 이어진다. 여덟 살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 초청으로 미 유학길에 올라 콜로라도주립대에서 핵물리학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5~9년 정도 나사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다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온다. 서울대에 보내겠다던 부모의 장담과는 달리 검정고시를 거쳐 충북대에 들어갔다. 지금은 한신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신동이 범재(凡才)가 됐으니 뭔가 큰일을 할 것으로 기대했던 대중이 실망한 것도 당연하지 싶다. 경력 조작 의혹이 생기자 '아이의 정상 발육 등을 위해 유학 간 것처럼 하고 집에서 가르쳐왔다'는 부모의 고백은 허망하기까지 하다. 김 교수같이 한때 신동으로 불리다가 홀연히 사라진 인물들이 한둘인가. 예전에는 동네마다 그럴듯한 스토리를 가진 천재가 하나쯤은 있을 정도였다. 1968년 모 일간지 기사를 보자. '여섯 살밖에 안된 어린이가 3,000여자의 한자를 깨우치고 헌법 전문을 줄줄 외우는 등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 화제다' 경북 영덕에 살던 김기호라는 아이의 IQ는 190이었으나 지금은 평범하게 살고 있다.

여덟 살 때 대학에 입학해 화제가 된 송유근군이 논문 표절 시비에 휘말려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박사학위 논문의 국제학술지 게재가 취소돼 국내 최연소 박사 타이틀도 뒤로 미뤄질 모양이다. 정확한 연유야 곧 알려지겠지만 주변의 과욕과 조바심이 일을 그르치지는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이번 일로 송군이 느꼈을 당혹감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가장 큰 부담은 뭐든지 잘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었다"는 한 불행한 천재의 말이 떠오른다. 지나친 관심보다 멀리서 지켜봐주는 것이 송군을 도와주는 올바른 방법 아닐까.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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