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메탈 그룹들이 대부분 그렇듯 주다스 프리스트 역시 자신들만의 독특한 퍼포먼스로 공연의 시작을 알린다. 가죽 재킷을 걸친 리더 롭 헬포드가 요란벅적한 배기음을 내는 바이크를 타고 무대에 등장한다. 올봄 내한공연 역시 오프닝에서 롭 헬포드는그렇게 등장했다. 그렇다. 이 바이크가 바로 오늘 소개할 할리 데이비슨(Harley-Davidson)이다. 바이크를 즐기든 아니든 많은 중년 남성들의 로망인 아메리칸 바이크의 대명사다.
전성기 주다스 프리스트 공연 당시의 모습. 공연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할리데이비슨은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기자도 드디어 할리 데이비슨과 조우했다. 첫 바이크로 그렇게 탐을 냈지만 결국 지갑 사정 탓에 눈물을 머금었던 바로 바이크다. 아시다시피 할리 라인업에는 소형 바이크가 없다. 가장 소형 모델의 배기량이 750㏄다. 최상위 모델인 ‘CVO™ 로드 글라이드 울트라’는 배기량 1,800㏄에 422㎏에 이른다. 사실 기자는 시승을 위해 서울 한남동 본사를 찾았을 때까지만 해도 기자가 소유한 야마하 볼트와 비슷한 차체를 지닌 ‘아담한’ 아이언883 정도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건네받은 바이크는 ‘FXDL 로우라이더’였다. 한숨이 푸욱~. 간단히 스펙을 소개하자면 건조중량 296㎏에 배기량 1,690㏄의 ‘다이나’ 패밀리다. 다이나 계열 바이크는 할리 시리즈 중 가장 복고적인 느낌이 나는 모델들이다. 기존 바이크에 각자의 개성을 더한 커스텀이 유행하던 1960년대의 시대상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한남동 할리데이비슨코리아 매장 내부. 묵직한 아메리칸 바이크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 눈이 즐거워진다.
사실 할리에 대해서는 해야 할 말들이 너무 많지만 여기서는 과감히 생략하기로 한다. 기본적인 정보는 위키피디아(▶클릭)를 참조하면 좋을듯.로우라이더. 일단 외모만으로 시선을 압도한다. 그냥 딱 할리다. 트레이드마크인 45도 각으로 배치된 은빛 찬란한 V트윈캠 엔진. 널찍한 연료탱크의 볼륨감도 시선을 끈다. 아날로그 rpm 미터와 속도계가 주는 투박함은 할리의 질감과 자연스럽게 매치된다.
로우라이더의 심장인 공랭식의 103큐빅인치 V-트윈캠 엔진.
시트에 몸을 올린다. 중량감이 심리를 압박한다. 제대로 출발이나 할 수 있을까. 위안이 된건 생각보다 낮은 시트고. (발이 닫는다!). 시승 섭외를 담당하는 유주희 기자가 특별히 회사 측에 낮은 시트고를 요청했다고 한다. 땡큐 유주희!
조심스럽게 시동을 건다. 묵직한 배기음. 그런데 흔히 길에서 듣던 요란한 소리는 아니다. 국내 소음 기준 탓이다. 그래도 시트에 앉는 순간 다른 바이크와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할리 특유의 고동이 온몸에 퍼져 온다.
1단 기어로 변속, 그리고 출발. 그런데 의외로 그리 부담이 없다. 넘치는 힘으로 부드럽게 도로 위로 올라선다.
시승 코스는 한남동 본사-소월길-구기터널-구파발을 거쳐 통일로를 따라 임진각으로 잡았다. 넘치는 엔진의 힘 때문에 6단 기어를 제대로 사용해 보지도 못한채 서울을 벗어났다.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교외로 접어드니 비로소 할리의 참맛이 느껴진다. 묵직한 차체가 주는 안정감. 제법 속도를 높여도 라이딩 자체가 편안하다. 중량감 때문에 코너링 시에도 불안정함이 없다. 날렵한 스포츠 바이크들처럼 고속 코너링은 어렵겠지만(그런 용도의 바이크도 아니고) ‘저 무거운걸 어찌 탈까’라는 지나친 걱정은 덜어도 될듯.
임진각 역을 배경으로 한컷. 결코 만만치 않은 크기의 바이크지만 의외로 편안한 라이딩을 제공한다
완연한 가을 들녁을 만끽하며 라이딩의 재미를 채 느끼기도 전에 임진각에 도착했다. 너무 짧다는 느낌. 그래서 다시 임진각을 나와 전곡으로 목적지를 연장했다. 한산한 편도 2차선 도로를 시원하게 잘도 달려나간다. ‘이래서 할리를 타는구나.’
가을이 깊어가는 임진각. 이동 수단이 무엇이든 여행이라는 것은 늘 새로운 활력소가 된다.
다만 모든 것이 그렇듯 완벽함은 없다. 클러치가 꽤나 묵직하다. 도심에서 잦은 변속은 스트레스가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애당초 로우라이더는 도심형 바이크는 아니다. 한적한 도로에서 느긋하게 크루징하기에 적합하다. 브레이크 응답성이 다소 떨어지는 것도 옥의 티다. 가볍게 발을 대어 주는 것만으로 곧바로 반응하는 일제 바이크들과는 확실히 차이가 느껴진다. 그렇지만 누군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할리는 기능이 아닌 감성으로 느끼는 바이크라고….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너무 날렵하지 않은 투박함에 끌린다. 마치 어느날 문득 허름한 지하 호프에서 턴테이블에 올려진 LP판에서 흐르는 옛 노래를 들었을 때의 그 정감이랄까. 그래서 나이 지긋한 중년들이 할리의 주수요층인지도 모르겠다.‘전곡양평해장국’의 선지해장국. 넉넉하고 신선한 선지와 깔끔한 국물 맛에 가격도 7,000원으로 부담없다. 전곡을 지나면 꼭 한번 들러볼 만한 곳으로 추천하고 싶은 맛집이다.
하루종일 한적한 시골 길을 돌아다니다 해질 무렵에야 다시 한남동 매장으로 복귀.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계속된 라이딩이었음에도 피로보다는 오래전 짝사랑을 만난듯 여운이 남는다. 그렇게 할리 로우라이더와의 짧고 진한 만남이 끝났다./dhch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