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고르는 법이 가장 중요… 소비자 입장서 선택해야
색다른 럭셔리 브랜드 전략 메이저 시공사 이긴 비결
시행·시공·분양대행 넘어 금융업까지 확장이 목표
30대 초반 나이에 부동산 디벨로퍼 세계에 뛰어든 인물이 있다. 노련하고 경험 많은 베테랑들이 포진하고 있는 부동산 개발업계에 젊은 혈기로 도전장을 내민 인물은 바로 안재홍(37·사진) 안강건설 대표다. 몇 번의 실수를 통해 그는 '땅 고르는 법'을 배우는 것이 디벨로퍼가 가져야 할 중요한 자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의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시행과 시공, 분양대행을 넘어 금융업까지 업을 확장해 '디벨로퍼의 모델'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안 대표는 "지금은 앞서 간 선배들을 뒤쫓는 입장이지만 (본인의 길이) 훗날 디벨로퍼를 꿈꾸는 젊은 청춘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몇 번의 좌절, 그리고 깨달은 가치
안 대표가 처음으로 직접 시행에 나선 것은 지난 2011년 초다. 당시 그는 인천에서 계약금 3억원을 주고 땅을 사들였다. 결과적으로 그 사업은 쓰디 쓴 경험을 안겨주었다. 부동산 중개업소의 소개로 덥석 땅을 사버렸는데 사업성이 없었던 땅이었다.
그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를 하려고 금융권을 뛰어다녔는데 금융권도 시공사도 원하는 땅이 아니었다"며 "결국 당시 내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땅이라고 생각해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젊은 혈기만 믿고 무턱대고 뛰어드는 바람에 계약금을 날려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안 대표는 디벨로퍼가 가져야 할 중요한 자질 중 하나인 '땅 고르는 법'을 배웠다. 그는 "시행에 뛰어들기 전에 분양 마케팅을 하면서 주로 미분양 물량을 처리하다 보니 그 땅이 사업성이 있는지를 생각하기 보다는 무조건 팔 수 있다는 생각으로 땅을 샀다"며 "당시 경험을 통해 '같이 일을 하는 금융사와 시공사도 좋아할 만한 땅'을 골라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고 말했다.
덧붙여 자신이 팔 수 있는 땅이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땅을 골라야 한다는 점도 깨달았다. 그는 "이를테면 오피스텔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차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역세권을 잡아야 한다"며 "첫 실패를 통해 '내가 아닌 같이 사업을 하는 사람들과 상품을 이용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땅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고 강조했다.
젊은 디벨로퍼의 시행착오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안 대표는 같은 해 7월 두 번째로 시행에 나선 '동탄 삼성시티 오피스텔' 사업에서도 좌절을 맛봤다. 당시는 시공사가 문제였다. 대출은 문제가 없었지만 책임준공 능력이 없는 지방의 작은 시공사와 일을 하는 바람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를 통해 시공사의 중요성도 깨달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금융업까지 영역 확장, 모델 만들 것
초반에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 한 덕분에 최근 들어 안 대표는 시행하는 사업마다 성과를 내고 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로 작년 하반기에 마곡지구 C1-2블록에 분양한 '럭스나인 오피스텔'을 꼽았다.
당시 문주현 회장이 이끄는 엠디엠(MDM)의 '보타닉 푸르지오 시티'를 비롯한 메이저 시공사들과 겨뤄 분양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당시 우리는 2군 시공사를 선택해야 했는데 메이저 시공사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색다른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브랜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9가지의 럭셔리함을 강조한 '럭스 나인 브랜드'의 탄생배경이다. 이 같은 안 대표의 전략은 큰 성공을 거뒀다. 532실이 40여 일 만에 전부 분양됐다.
올해 3월 마곡지구 C3-6블록에 분양한 섹션오피스 '안강 프라이빗 타워'도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다. 안강건설이 처음으로 시공을 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원래 안 대표는 2017년께 시공을 시작하려고 했었다. 자신이 시행하는 상품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더 좋게 만들기 위해서다.
하지만 생각보다 시기가 빨라졌다. 원래 거래하는 시공사가 주거래 은행의 심사에서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거래 은행에서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다. 안 대표에게 직접 시공까지 해보라고 권한 것이다. 이 이면에는 주거래 은행과 거래 하면서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는 신뢰가 밑바탕 됐다. 시행과 시공을 모두 맡은 '안강 프라이빗 타워'는 소위 말하는 '대박'을 쳤다.
안 대표는 스스로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회사를 키우는 것 외에도 디벨로퍼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겨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시행개발 사업은 시행, 시공, 금융, 분양 대행 이 네 개가 한 몸이 되지 않는 이상은 절대로 앞으로 못 나간다"며 "앞으로는 금융으로 업을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문주현 한국부동산개발협회(KODA) 회장이 디벨로퍼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과 같이 젊은 후배들이 믿고 따라올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 먼저 성공한 선배들의 역할"이라며 "지금까지 사업을 하면서 경험과 지식 부족으로 어려움도 겪고 실패도 했지만 뒤를 따라오는 후배들은 실패를 줄이고 돈을 잃는 일이 없도록 좋은 길을 닦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co.kr
사진=송은석기자
20대때 의류업… 사업 기본 배워 ■ 안재홍 대표는 고병기 기자 안재홍 안강건설 대표는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 하는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의류업에 종사했다. 아르바이트와 부모님의 도움으로 자본금 1,500만원을 모아 친구와 함께 부천에서 의류 매장을 내고 동대문에서 옷을 가져와 팔았다. 안 대표 스스로 하루에 잠을 2~3시간씩만 자며 가장 열심히 살았던 시기라고 말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매장 위치가 워낙 좋지 않아 하루하루 빚만 늘어 갔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매장 위치가 아니었다. 그는 "동대문에서 가져와 파는 옷은 다 똑 같은 옷 인줄 알았는데 장사가 너무 안돼 장사가 잘 되는 곳을 유심히 살펴보니 확실히 옷이 다르더라"며 "카드 빚을 내서라도 자신 있게 팔 수 있는 옷으로 바꾸고 나니 그때부터 장사가 되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를 통해 안 대표는 사업의 가장 기본은 좋은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물건만 있다고 해서 잘 되는 건 아니다. 영업력도 중요하다. 그는 외진 곳에 있는 가게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어디서나 눈에 띄는 색깔의 간판을 달고 사람들이 호기심을 느낄 수 있는 상호로 가게 이름을 바꿨다. 또 당시 업계에서는 흔치 않은 '멤버십 카드'를 만들어 단골도 유치했다. 이처럼 젊은 나이에 도전하면서 부딪치는 난관들을 극복하면서 쌓은 경험들은 안 대표가 향후 분양대행을 거쳐 지금의 개발 사업에 뛰어드는 과정에서도 큰 힘이 되었다. 그런 그는 요즘 체계적인 부동산 개발업 공부에 나섰다. 안 대표는 "지금까지는 주로 현장을 다니면서 배웠는데 앞으로는 전문적인 교육 과정이나 해외 견학을 통해 체계적으로 사업에 필요한 지식을 쌓고 싶다"고 말했다. 안 대표의 노력은 이미 시작됐다. 그는 지난해부터 일본·싱가포르·대만·미국 등 해외 현장을 찾아 한국에 접목할만한 사례를 살펴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