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소믈리에는 와인과 관련해 구매와 보관, 서빙까지 담당하는 직업으로 알고 계실텐데요.
김치에도 소믈리에가 있다는 사실이 생소한 분들 많으실겁니다.
김치에 관한 전문 지식으로 무장하고 우리의 김치 맛을 지키는데 인생을 건 그녀. 김치의 세계화를 위해 뛰고 있는 ‘김치 소믈리에 1호’ 양향자씨를 서울경제썸이 만났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치 소믈리에 1호’ 양향자입니다. 세계음식문화연구원 이사장과 한국 푸드코디네이터 협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김치소믈리에 1호 양향자씨
어렸을 때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옛날엔 시골에 냉장고도 먹거리도 많지 않다 보니 어머니께서 늘 겨울에 김치를 300포기 이상 담그셨어요. 어머니를 도와드렸는데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 때 ‘나의 재능이 요리구나’ 라고 생각하게 됐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어머니의 무한 칭찬 덕에 결국 요리사의 길을 걷게 됐어요.
한식이 발전하려면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를 개척할 선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중국과는 12년, 베트남과도 8년째 김치를 포함한 한식을 알리기 위한 교류를 이어오고 있어요. 최근에는 아제르바이잔, 독일, 루마니아, 카타르, 이탈리아, 대만 등과도 교류의 물꼬를 텄습니다. 2006년 뉴욕타임즈에서 김치를 세계 5대 건강 음식으로 선정하고,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됐을 땐 제 스스로가 참 뜻깊은 일을 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 양향자씨가 만든 요리
재정적인 어려움과 대중의 인지도가 없었던 게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정말 생소한 직업이니까요. 우선 한식과 푸드 코디에 대해 홍보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도했던 것이 바로 2004년 개최한 국제 테이블웨어 박람회라는 페스티벌이었어요. 예상외로 정말 많은 학생들과 일반인이 참가했어요. 참가자들이 적극적으로 각자의 음식을 맛보기도 하고 공부하기도 하는 장이 됐죠. 위기의 순간이 오히려 저에겐 희망의 기회로 바뀐 것 같아요.
갓김치예요. 고향에서 어릴 때부터 갓김치를 자주 먹다 보니 그 독특한 향에 매료됐죠. 배추김치는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어서 요리사 입장에선 좋은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김치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바로 ‘간’입니다. 김치 뿐 아니라 모든 음식의 생명은 감칠맛을 내는 간이잖아요. 지역 고유의 간이 잘 갖춰진 김치가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예전에 TV를 보다가 젊은 사람들이 시리얼과 우유로 아침식사를 하는 걸 봤는데 깜짝 놀라면서 힘이 쭉 빠졌어요. 우리 음식을 세계화 하겠다고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정작 국내에서는 어린 세대들이 서양식에 더 길들여져 있는거니까요. 앞으로 한식을 이끌어갈 그들의 입맛이 중요한데 말이죠. 마음이 철렁했어요 정말. 그때부터 김치 연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와인은 가치가 있잖아요. 와인 소믈리에들이 와인을 세세하게 분석해서 가치를 높이듯 김치의 가치를 높여줄 김치소믈리에라는 직업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최근 중국산 김치가 많이 유통되는 게 사실이죠. 중국에서 만든 김치는 인건비와 운송비를 줄이기 위해서 아무래도 최고의 재료를 고집할 수 없겠죠. 식당에서 국내산 김치를 먹기 쉽지 않지만 좀 더 안전하게 먹으려면 HACCP(해썹)* 표시가 있는 걸 먹는 걸 권장해요. 될 수 있으면 집에서 담궈서 먹는게 최상이구요.
*위해 요소 중점 관리 기준(Hazard Analysis Critical Control Points) 또는 HACCP은 생산-제조-유통의 전과정에서 식품의 위생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해요소를 분석하고, 이러한 위해 요소를 제거하거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단계에 중요관리점을 설정하여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식품의 안전을 관리하는 제도
김치 연구를 시작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요즘 너무 행복해요. 저는 김치 소믈리에뿐만 아니라 김치 명인들도 많이 양성했어요. 김치 명인은 오랜 시간동안 김치를 만들어오신 분들이고, 김치 소믈리에는 김치의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전략적인 연구, 스토리 텔링을 할 줄 아는 사람이예요. 김치는 이제 더이상 한국에서만 먹는 음식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먹는 음식이죠. 그래서 김치 소믈리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세계 곳곳에 김치 소믈리에가 있어야 그 나라 요리에 맞는 김치를 제공할 수 있고, 김치를 접목한 요리도 만들 수 있죠. 요리도 그런 변화와 트렌드를 빨리 캐치하고 개발하는 것이 필요해요. 그러한 역할이 김치 소믈리에의 역할이구요.
당연히 제 뒤를 이을 후배들을 많이 양성하는 것입니다. 제가 중국, 대만, 러시아 등 해외 교육을 많이 가다보니 무엇보다 김치에 그 나라의 특성을 잘 반영해서 스토리텔링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앞으로 김치 소믈리에들의 스토리텔링 능력을 키워주고 싶어요. 이 친구들이 많이 있어야 김치의 미래가 밝으니까요. 김치는 이제 세계인의 음식이라고 생각해요. 세계에서 김치를 제대로 알리고 홍보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 대만 김치소믈리에 교육과정 후 참가 수료증 전달 모습
먼저 김치의 역사, 영양학적 지식등 이론과 직접 음식 맛을 보는 실습도 같이 해요. 주2회 3시간씩 3개월 과정으로 교육을 받습니다. 김치 소믈리에는 김치를 직접 담그는 것보다 김치의 비전제시, 스토리텔링, 음식과의 영양학적 매칭, 세팅이 더 중요합니다.
제가 최근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수강생이 있어요. 지난 7월 뉴욕에서 온 새댁이 저를 찾아왔어요. 그 친구가 결혼하고 뉴욕에서 살다보니 김치가 그리운데 사먹기도 쉽지 않고 담그기도 쉽지 않다보니 김치 공장 창업을 하겠다고 생각했다더라구요. 만약에 성공하면 김치관련 레스토랑도 하겠다면서. 그래서 저한테 김치 소믈리에 교육과정을 배우고, 자격증도 획득해서 뉴욕으로 돌아 갔어요. 요즘엔 젊은이들이 참 트렌드 변화에 빠른거 같아요.
사실 김치의 비법이라고 하면 전통적인 기법을 생각하는데 제가 생각하는 비법은 ‘시대의 트렌드에 맞춰서 응용할 줄 아는 것’이 저만의 비법이라고 생각해요. 영양학적인 면에서는 발효가 잘 돼야 김치 고유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점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일단 요리사라는 직업은 꾸준한 인내심과 체력을 가진 사람이어야 해요. 최근 셰프 열풍이 불면서 셰프를 꿈꾸고 도전하려는 사람들이 확 늘어났잖아요. 근데 화려한 쇼맨십과 멋진 셰프 앞치마가 보이는 전부가 아니죠. 진짜 그 셰프들이 그 자리에 올라가기까지의 피나는 노력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포기해야하는 것들을 과감히 포기하고 요리에만 몰두하는 게 필요해요.
제가 오랜 시간 김치와 한식을 위해 뛰어다니다보니 국가적인 차원의 바람이 있어요. 저처럼 한국의 문화 알리기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줬으면 좋겠어요. 사람이다보니 가끔 지치거나 그럴 때도 있는데,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지쳐버리게 되면 어짜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저는 평소 손으로 꾸미는 DIY작업들을 좋아해요. 꽃꽂이, 선물 포장 등등. 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어요.
요즘 바쁘게 살다보니 제 모습을 보면서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놀라고 있어요. 그래서 저를 가꿀까 하다가도 아직 해야될 일들이 자꾸 보여서 조급해지고 더 바빠지게 돼요. 생각해보니 제가 슬로우 푸드를 연구하는 사람이지만 제 삶은 슬로우 하지 않았던 것 같네요 하하. 정신없이 바쁘지만 매일매일,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해요. /정가람 인턴기자 garamj@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