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해가 지면 우리 동네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호롱불 하나에 의지해 온 가족이 모여 책도 보고 옷도 꿰매곤 했다. 어렵고 고단한 시절 우리 주변의 흔한 풍경이었다. 광복 직후인 1950년대의 국민소득은 겨우 65달러로 오늘날 가장 가난하다는 콩고·동티모르보다도 빈곤한 나라였다. 에너지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도입된 원자력발전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기적과 국민의 편익 증진에 견인차 역할을 했고 현재 우리나라 전력생산의 약 30%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원자력을 이용한 결과에 대한 책임은 다하지 못했다. 정부가 1980년대 중반부터 사용후핵연료 관리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지만 부지선정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며 여전히 우리 사회의 해결되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6월 말 법적 근거를 가진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약 20개월간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국민과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대한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했다고 들었다. 이 권고안에 대해 시민단계·원자력계 등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의견 차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정부가 아닌 민간인들이 중심이 돼 전문가·대학생, 그리고 원자력발전소의 최대 이해관계자들인 원전소재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권고안을 만든 것은 나름 의미가 크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가 있다. 정부는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을 바탕으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의 큰 방향을 조만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정부는 이 권고안을 바탕으로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방안을 마련해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의 포화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고 장기적으로는 안전하게 사용후핵연료를 관리하는 기술적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사실 사용후핵연료 관리는 우리나라만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원전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프랑스·영국·스웨덴·핀란드 등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더디지만 일관성을 갖고 국민과 소통하며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1990년에서 2006년까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440건의 공공분쟁을 분석한 국내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일반시설에 비해 화장장·쓰레기소각장·방폐장·발전소 등 비선호시설의 유치와 관련해 분쟁의 당사자가 정부·시민단체·정당, 지역주민 등으로 다양하고 분쟁기간도 평균 두배 이상 길다고 한다. 하지만 해결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국민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광범위한 국민을 위한 사업을 언제까지 미룰 수만은 없는 일이다.
정부는 미래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과 이를 실현해나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기를 당부한다. 사회의 다양한 주체들도 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를 정부의 일로만 남겨두고 끝낼 일이 아니다.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이 문제를 원전정책과 연계하려는 오류를 범하는 경향이 있으나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이미 발생한 결과물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원전정책과 사용후핵연료 관리가 연계돼 사용후핵연료 관리가 지연되면 될수록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온전히 미래세대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에서도 가치관의 대립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고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해줘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이제부터라도 원자력발전의 혜택을 누린 우리 모두가 큰 뜻으로 하나가 되기를 기대한다.
/박종희 동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