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타는 만남 A to Z] `디오라마의 마법` 그는 왜 작은 세상에 빠졌을까

“내 일은 딱 이거다 싶었죠”

디오라마를 보는 순간 첫눈에 반했고, 이제는 삶의 전부가 돼버렸다는 남자가 있습니다.

‘칙칙폭폭’ 기적을 울리며 앙증맞은 기차들이 철길을 달리고,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작은 인형들이 살아 숨쉬는 공간 디오라마. 아련한 추억으로의 여행과 상상 속 세상을 직접 만나는 경이로운 경험까지. 이 모든 것을 실현해주는 마법 같은 세계를 만나 ‘억대 연봉’을 포기한 그 남자를 서울경제 썸이 만났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생소한 단어 일 수 있어요. 쉽게 말해 미니어처로 제작된 모형과 배경을 설치하고 특정한 상황의 한 장면으로 구성해 실제로 보는 것처럼 느끼도록 만든 거예요. 흔히 박물관이나 미술관, 과학관 등에서 많이 볼 수 있죠. 디오라마는 현대어 같지만 사실 근대 이후 귀족들이 테이블 위에 인형들을 올려놓고 역사적인 전투 장면 등을 재현해 놓았던 데서 유래한 오래된 문화죠.


평소에 친분이 있던 한 지인과의 식사자리가 본격적으로 디오라마 세계에 뛰어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어요. 그 분이 운영하는 회사가 전 세계 모형 기관차 시장의 60%를 차지하는 곳인데 그 분의 고민을 듣게 된거죠. 잘 만들어서 수출을 해도 약간의 스크래치 때문에 불량으로 클레임이 들어온다는 거였어요. 독일 등 해외업체 제품은 전시 중에 갑자기 멈춰도 ‘현실감을 위해서 일부러 그랬구나’라며 관대하게 넘어가는데 말이에요. 차별이 심한거죠. 그래서 제가 제안을 했어요. 협력사로 같이 해보자고. 정말 멋진 제품으로 제대로 붙어보자고요. 제 입장에서도 제작 비용이 반으로 주니까 서로 윈윈인거죠.
▲디오라마코리아 설립자 최철규씨



크게 산업용, 전시용, 홍보용, 교육용으로 활용될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건축 모형물이나 박물관 모형 등 전시용 조형물이 활성화돼 있는데 최근에는 아이들 교육용 자료와 테마파크 개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과거와 미래의 모습을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는 시각물 혹은 체험 엔터테인먼트 분야로도 활용할 수 있는거죠. 제주도에 가면 미니랜드처럼요.



해외에서 디오라마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전국민의 취미예요. 특히 독일의 경우는 온가족이 함께 즐기는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를 잡았죠. 그래서 매년 한 마을의 여러 가족들이 다 모여서 각종 미니어처들을 직접 만들어요. 완성되면 서로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파티를 하고요. 이런 문화적 토양 속에서 유명한 ‘미니어처 원더랜드’가 자연스럽게 탄생한거죠. 우리나라도 최근에 취미생활로 디오라마를 즐기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미니어처 제작뿐만 아니라 레고 디오라마 커뮤니티도 계속 늘고 있어요.


안 가본 전시회가 없어요. 그만큼 전시에 제 인생을 바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시사업을 하려면 우선 많이 보고, 듣고, 배워야 해요. 국내 뿐 아니라 해외의 전시를 특히 눈여겨 봅니다. 우리나라보다 전시 문화가 훨씬 활성화 돼있고 다양하거든요. 또 나라마다 개성도 다 다르고요. 그리고 또 한가지. 이 산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요. 왜 전시사업이 필요하고 해야하는지 목적의식이 있어야 하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돈 되는 사업이다’ 생각하고 뛰어드는데, 계속해서 트렌드에 맞게 발전하지 않으면 금방 사그라들어요. 트렌드에 대한 관심과 지속적인 노력. 그게 저만의 노하우이자 비전입니다.

제가 하는 역할은 사실 직접 디오라마를 만드는 것도, 움직이는 기술을 구현하는 것도 아니에요. 저는 멈춰있는 디오라마 공간에 생명을 불어 넣습니다. 드라마처럼 스토리텔링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거예요. 예를 들어 6.25 전쟁을 지금 세대 아이들은 겪어보지 않았지만 가상 현실의 디오라마에서 경험하고 느끼는 것처럼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또 하나의 세상인거죠. 이번에 전시한 동해역 디오라마에서도 신호등에 맞춰서 차들이 좌회전·직진을 하고, 열차 시간표에 맞춰서 기차들이 움직여요. 현실의 축소판인거죠. 2cm의 사람모형들이 도로위에서 싸우는 모습, 가게에서 물건 사는 모습 등 나름의 스토리가 다 있죠.


올해는 적자였어요. 특히 ‘아임리틀’ 전시장을 만드느라 투자를 좀 더 했습니다. 근데 내년부턴 힘찬 도약을 기대하고 있어요. 몇몇 지자체들과 다양한 미니어처 테마파크를 구상중이거든요. 그리고 얼마 전부터 대만의 한 회사와 프로젝트를 준비중입니다. 전세계적으로 디지털 디오라마를 하는 곳이 많지 않다보니까 그만큼 해외 수출의 기회도 많을 수 있죠. 판로만 뚫린다면요. 응원 좀 부탁드려요. 하하.


▲ 작은 디오라마 세상 안에도 다양한 사람들의 스토리가 담겨있다.

지금 전시 중인 ‘아임리틀’은 제작 기간이 7개월 걸렸습니다. 실제 집짓는 것만큼 오래 걸렸죠. 하나의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을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기차나 교통수단 모형은 협력업체에서 제작합니다. 그리고 저희 회사에 소속된 미술센터가 파주에 있는데 그 곳에서 전문 인력들이 디오라마를 제작해요. 주로 건축학과 출신들이 대학교 때 조형물을 많이 만들고 접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되니까 계속 하시는 분들도 있고, 취미가 직업이 된 분들도 있어요. 연령대는 30~40대가 가장 많습니다. 이 분야가 아직 산업화 돼있지 않다보니까 진입 장벽이 거의 없는 편이죠. 그래서 가끔 농담삼아 말해요. 제가 직접 디오라마 전문 기술대학교를 설립하겠다고요. 제가 하는 사업을 키우려면 우리나라에 디오라마를 전문적으로 하시는 인력이 그만큼 필요하게 되니까요. 제가 직접 배우고 싶어도 2cm짜리 인형을 색칠하려면 핀셋으로 들고 이쑤시개만한 붓으로 작업해야하는데 눈이 침침해서 힘들어요. 하하.


독일에 있는 원더랜드를 넘어서고 싶어요. 원더랜드를 찾은 방문객들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흠뻑 빠져들어요. 아이들이 많을 거 같은데 관람객의 70% 이상이 성인입니다. 그만큼 대중화 되고 사람들 삶의 한 부분이 된거죠. 우리 회사가 가진 독일과의 차별적인 비전은 바로 ‘전문성’입니다. 독일의 경우 아마추어 형제들이 시작한 거거든요. 우리는 전문가 집단이에요. IT뿐 아니라 미술, MT(기계), BT(생명공학), VR 가상현실, 증강현실까지 모두 현실 구현이 가능한 분야죠. 어마어마한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거죠. 해외 수출도 블루오션이구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일산 킨텍스에서 ‘아임리틀’ 디오라마 전시중이다. 위의 그림은 전시 내부 도면.



우리나라에서 하루 빨리 이 사업이 자리를 잡고 세계로 진출하고 싶어요. 우리나라가 IT, 디지털 분야에서 최고임에도 불구하고 이걸 활용할 수 있는 분야가 없다는 게 아쉬워요.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결합한 멋진 테마파크를 만드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테마파크를 만들면 그 안에 다양한 역사적, 시대적 배경이 꾸려질 수 있어요. 직접 겪어 보지 못하고, 살아 보지 못한 공간을 가상 공간에서 체험할 수 있게 되는거죠. 디지털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전 단순히 전시보러 다니는 걸 좋아하지만 이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하는 것, 그들과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스토리텔링하는 게 제 역할이에요. 앞으로 이 사업을 이끌어 줄 진짜 힘은 미래의 디오라마 제작자들, IT기술자들이라고 확신합니다.


디오라마는 단순한 전시조형물이 아니에요. 작품을 통해서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함께 경험을 공유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스토리텔링이 중요한거죠.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 원석을 발견했어요. 본인은 이거 대박이라고 생각하겠죠. 근데 가공하지 않은 원석을 그대로 팔 경우, 그 가치가 떨어집니다. 왜냐면 그냥 광물 덩어리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역사상 최고의 다이아몬드라고 스토리텔링을 하면서, 최고 수준의 디자이너가 세공을 하면 그 가치는 1,000배 이상이 되는 거죠. 좋은 스토리텔링이야 말로 디오라마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해요.
▲디오라마 작품을 만드는 미술 센터 직원들 모습. 이번 전시작품인 ‘동해역’ 디오라마는 각기 모형 제작부터 색칠과 세팅까지 한 작품을 만드는데 최소 7개월정도 걸렸다.




저와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이 일을 산업의 한 분야로 만드는 게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제작하는 전문 인력들이 많은데도 이 사람들의 직업카테고리조차 없는 현실입니다. 제가 하는 사업은 사실 디오라마긴 하지만 일반 디오라마와는 달라요. 움직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끼리는 디지털 디오라마라고 불러요. 전 세계에 통용될 수 있는 명사가 필요해요. 요리하는 사람들을 요리사 외에 요즘은 셰프라는 말이 생긴 것 처럼요. 아직 스타트업이다 보니까 하나하나 준비할 게 많죠. 저는 이 일이 진정한 창조경제로 발전 할 수 있는 그런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직은 미미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하루빨리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 많습니다.


어릴 때부터 미술 전시회나 음악회 가는 걸 좋아했어요. 특히 전시회는 갈 때마다 가슴이 설렐 정도로 관심이 많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회는 샤갈전이예요. 한 언론사가 주최였었는데 관람객이 너무 많아서 작품을 감상하기가 힘들 정도였어요. 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문화를 느끼고 함께 추억을 만들었다는 게 좋았어요. 전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찾는 테마파크를 만들고 싶어요. 그 공간에 담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거죠. 그 꿈을 꼭 이룰 겁니다.

정가람 인턴기자 garam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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