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5개 섹션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회는 미국에서 진행된 전시회 중 가장 많은 브레게 앤티크 피스들이 선보여 오픈 전부터 시계 마니아들의 유별난 관심을 받았다. 총 70여 점의 오브제 중에는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 Abraham-Louis Breguet(1747~1823)가 시계 제작에 직접 사용한 장비 등도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스위스 국립박물관 및 프랑스 모빌리에 국립박물관 등의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Marie-Antoinette N°1160는 마리 앙투아네트(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왕비)와의 일화로 너무나 유명한 시계다. 평소 마리 앙투아네트와 두터운 친분 관계를 맺고 있던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는 어느날 그녀를 위한 ‘최고의 시계’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그는 요청을 받아들여 1783년 Marie-Antoinette N°160 시계 제작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후 일어난 프랑스 혁명으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1793년 처형당하면서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 역시 정신적 방황을 겪으며 시계 제작이 잠시 중단되는 일을 겪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죽음을 슬퍼하던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는 이후 그녀를 위한 최고의 시계를 꼭 완성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는데, 이때부터 그는 이 시계에 들어갈 기술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게 됐다. 브레게 헤어 스프링, 퍼페추얼 캘린더, 투르비용, 이중(二重) 초침을 사용한 크로노그래프 등이 이 시기에 개발됐다.
그는 새로운 기능을 개발할 때마다 Marie-Antoinette N°160에 이 기능들을 적용하기 위해 시계의 설계를 계속 바꾸었는데, 이는 시계 완성이 계속 연기되는 원인이 됐다. 결국 그는 Marie-Antoinette N°160을 다 완성하지 못하고 1823년 눈을 감았다. 이후 그의 아들과 제자들이 뜻을 받들어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 사후 4년 만인 1827년 Marie-Antoinette N°160을 완성했다.
Marie-Antoinette N°160은 마리 앙투아네트만큼이나 운명이 평탄치 못했는데, 급기야 1983년에는 도둑에게 탈취돼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스와치그룹은 포상금까지 걸고 이 시계를 되찾으려 했으나 찾을 방법이 묘연하자 2004년 이 시계를 아예 새로 만들기로 한다. 스와치그룹은 시계제작자와 엔지니어, 역사학자 등 50여 명의 전문가 집단을 구성해 시계 제작 착수 4년 만인 2008년 Marie-Antoinette N°1160을 완성한다. 말하자면 Marie-Antoinette N°1160은 Marie-Antoinette N°160의 복제품인 셈이다.
Tourbillon, Chronograph 두 시계는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가 Marie-Antoinette N°160 제작을 위해 개발한 여러 특별한 기술 중 시계 역사에 큰 획을 그은 투르비용과 이중 초침 크로노그래프 기술이 그의 손에 의해 직접 적용된 시계들이다. 두 기술이 사용된 최초의 시계라 봐도 무방한 셈이다. 시간 계측 기능인 크로노그래프는 니콜라스 뤼섹 Nicolas Rieussec이 1821년 처음 개발했으나, 이에서 더 발전돼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다중 초침 크로노그래프는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가 1820년 처음 개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