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더를 가동하자 계기판에 붉은 세모 6개가 남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잡혔다. 가상 적 전투기 출현! 곧 노란 세모로 표시된 아군 전투기 2대가 따라붙었다.’ 지난 6일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기자들 앞에서 시연한 AESA(다기능위상배열) 레이더 가동 장면의 일부다.
ADD 대전 본소에 있는 전자전 비행모의시험실에서 진행된 시연은 AESA 레이더가 전과 아군의 전투기 8대를 동시에 탐색, 추적할 수 있음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날 ADD가 공개한 레이더는 한국형전투기(KF-X)에 탑재하기 위해 개발 중인 AESA 레이더. 아직은 지상 장비지만 소자를 늘리고 크기를 줄이며 레이더에서 나오는 열을 냉각하는 장치를 소형화하면 KF-X 탑재가 가능해진다.
현재 우리 공군이 보유한 KF-16과 F-15K 전투기는 기계식 레이더가 달려 있어 다수의 표적을 실시간으로 동시에 추적할 수 없다. 반면 ADD가 선보인 AESA 레이더 계기판 화면에는 가상의 적 전투기가 급선회하는 것도 그대로 나타났다. 표적의 급격한 움직임도 AESA 레이더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ADD는 이날 AESA 레이더와 1.1㎞ 떨어진 곳에 모의 표적을 설치하고 전자파 반사 시간 조절을 통해 모의 표적이 50노티컬마일 거리에서 접근하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AESA 레이더는 모의 표적이 44노티컬마일(약 81㎞) 정도 떨어진 곳에 들어오자 이를 포착해냈다.
ADD가 이날 가동한 AESA 레이더 시제품은 송수신 소자인 모듈을 500개 갖췄다. KF-X에 탑재될 AESA 레이더는 1,000개의 모듈을 장착하게 돼 탐색·추적 능력도 그만큼 커진다. ADD는 AESA 레이더 시제품을 개발했지만 앞으로 비행 시험을 통해 전투기 비행 환경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레이더 장비도 소형화·경량화해야 한다.
ADD 관계자는 “기술적인 면에서는 AESA 레이더 개발에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다만 개발 일정에 맞추려면 인력과 예산을 늘릴 필요는 있다”고 설명했다.
ADD는 이날 AESA 레이더 외에도 KF-X의 핵심 항공전자장비인 IRST(적외선탐색 추적장비), EO TGP(전자광학 표적추적장비), RF 재머(전자파 방해장비)의 개발 현황도 공개했다.
보안을 중시하는 ADD가 취재진을 대전 본소에 초청해 연구 현장을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에게 ‘KF-X 사업을 기한 안에 성공시키도록 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을 계기로 KF-X 사업에 관한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당시 박 대통령은 장 청장에게 ‘KF-X 사업에 관한 정확한 사실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ADD는 이날 이들 장비의 체계통합기술 개발을 위한 상세한 로드맵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ADD 관계자는 “연구개발이란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길을 가는 것’으로, 위험을 감내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이라며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위험을 지나치게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권홍우기자 hongw@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