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익명성 뒤에 숨으면 집단의 폭력은 잔인해져요."

강안 교수의 고인돌 강좌 '영화가 말을 건다' 7일 신수중서 열려
덴마크 영화 '더 헌터'로 집단폭력, 무분별한 마녀사냥 경고

7일 신수중학교 도서관에서 열린 ‘영화가 말을 건다’ 강좌에 참가한 학생들이 강안(오른쪽) 안양대 교수의 강의를 진지하게 듣고 있다./사진=백상경제연구원

“친구를 따돌리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침묵하며 다수의 말에 동조하기 보다는 먼저 사실관계부터 따지는 것이 우선이겠죠? 만약 무조건적으로 다수의 의견이나 감정에 맞장구치면 왕따의 피해자를 벼랑 끝으로 밀어버리는 상황이 될 수도 있어요. 익명의 뒤에 숨어버리면 집단의 폭력성은 더욱 가혹해진답니다.”

7일 마포구 신수중학교 도서관 혜윰터에서 강안(사진) 안양대 교수는 마포평생학습관이 마련한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 강좌 ‘영화가 말을 건다’에서 덴마크 영화 ‘더 헌터(2012)’ 통해 어린아이의 거짓말 한마디가 일파만파로 확대돼 이웃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한 유치원 교사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집단 따돌림에 대해 설명했다.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과 본지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기획· 운영하고 KT가 후원하는 청소년과 시민들을 위한 고전인문 아카데미로 올해 3회째다.

‘더 헌터’는 덴마크의 작은 마을에서 5살 소녀 클라라의 순진한 거짓말로 유치원 교사 루카스가 유아 성추행범으로 몰리며 친구들은 물론 마을 전체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전개해나가는 작품으로 2012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이다.


강 교수는 사실관계를 따지지 않고 무턱대고 한 사람을 잔인하게 짓밟아가는 공동체의 집단적인 폭력은 무고한 사람을 순식간에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버린다는 대목을 강조했다. “유치원 선생님 루카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어하는 다섯살짜리 소녀 클라라의 천사같은 얼굴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믿음은 아무 죄도 없는 루카스를 끔찍한 범죄자로 몰고 가게 돼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은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게 되고 마을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동조하면서 어제까지 친구였던 루카스를 상종해서는 안될 사람으로 낙인찍어버리죠. 마치 마녀사냥하듯이.”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영화는 직장을 잃을 위기에 놓인 루카스가 사냥터에서 사슴에게 총을 겨냥하는 장면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몸이라는 점을 암시하기도 했다. 강 교수는 루카스가 총으로 사슴을 죽이는 장면에서는 “아무 죄 없는 사슴을 겨냥해 총을 쏘는 루카스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라는 것을 말하고 있어요”라면서 “마을사람으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루카스가 곧 사슴이기도 하다는 의미지요. 즉, 마녀사냥이 시작된다는 것을 예고하고 있지요”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 사람을 막다른 길로 몰아붙이는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제일 먼저 할 일은 진실이 무엇인지를 따져야 하며,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번쯤은 서 봐야 한다는 것이죠”라면서 “만약 학교에서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상대방 친구의 입장에 서보는 역지사지 정신을 발휘해야 하겠지요”라며 설명했다.

학생들은 고사성어로 배운 역지사지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영화를 통해 맥락을 이해하는 듯 했다. 왕따, 학교폭력 등 자칫 예민할 수 있는 단어들에 대해서도 자신이 암묵적인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리며 강의 내내 진지하기만 했다.

이 학교 성호만 교사(언어교육부장)는 “학생들은 조각조각의 지식은 머리에 가득하지만 조각을 모아내는 사고력이 아직 부족하다. 교과서로만 공부를 가르치기에는 역부족인 시대가 됐다”면서 “도서관, 대학교 등과의 협업을 통해 학생들이 학교 담 너머의 지식을 모으고 또 종합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수준 높은 고인돌 프로젝트에 참가할 기회를 준 마포평생학습관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3회째인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21곳과 서울시 중고등학교 30여 곳에서 12월까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세부 프로그램은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포털 에버러닝(everlearning.sen.go.kr)을 참고하면 된다. 강좌는 무료이며 신청은 해당 도서관으로 문의하면 된다./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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